24일 오후 6시 55분. 여의도 국회의사당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회의실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브렉시트 관련 긴급 기자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금요일 저녁 시간의 기자 간담회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입니다. 신문들은 대부분 기사를 마감한 다음이고, 방송사 역시 저녁 주요 뉴스 제작을 대부분 끝낸 뒤라 ‘엄청난’ 내용이 아닌 이상 언론에 기사로 다뤄질 가능성도 높지 않은 시간대인데다 이날은 평일 중 가장 주목을 덜 받는 금요일이기 때문인데요. 이런 이유로 당 실무진에서는 언론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일요일 오전에 간담회를 여는 게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김 대표는 꼭 이날이 가기 전 해야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후문입니다.
김 대표는 15분 정도 진행된 간담회에서 이날 낮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 예상을 깨고 유럽연합(EU)을 탈퇴하기로 결정된 것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다소 의외였습니다. 김 대표는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가져올 파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과잉 반응 할 것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김 대표의 발언 내용입니다.
“앞으로 2년 정도 유예 기간을 갖고 조정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오늘 느끼는 경제적 충격이 지속되리라 보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브렉시트에 직면해 금융시장이 매우 동요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브렉시트 자체가 경제 실상에서 보는 것보다는 심리적 효과가 더 크지 않난 생각한다. 정치권에서 너무 충격적으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때의 충격처럼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게 분명하다. 여기 오지 전에 그쪽(현지)과 통화했는데 그 사람들도 놀란 기색이 아니다. 지나치게 과장해서 볼 필요가 없다.”
심지어 직접 ‘취재’한 현지 상황까지 언급하며 진정할 것을 당부했는데요. 사실 김 대표의 발언은 정부 관계자가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할 법한 내용이었습니다. 이어 “영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돈이 혹시 완전히 빠져나가면 금융시장이 혼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돈이라는 게 금방 빠져나가는 현상은 안 생길 것이라고 본다. 주가, 환율 등도 조금 출렁이다가 내주 정도 지나면 재조정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야당인 더민주가 보수 성향 인사인 김 대표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가 ‘경제민주화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경제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그 동안 시시때때로 경제 관련 현안에 대해 구체적 수치와 사례를 들며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경제 할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날도 이름은 간담회였지만 사실상 경제 할배의 ‘금요 심야 특별 강의’의 느낌이 더 강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특별 강의에는 김 대표의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그는 불확실성 증폭으로 추경론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는 질문에 “핑계 거리 좋은 게 하나 생겼지. 안 그래도 경제 어려운데 브렉시트 때문에 경제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니까 경제 활성화로 추경 해보자는 얘기를 할 거예요”라며 다소 비꼬는 듯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경제가 그리 어려워 질 것도 아니고 설사 다소 어려워 지더라도 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두면서 정부, 여당이 호들갑을 떨며 추경이니 뭐니 하며 원하는 대로 뭘 하려 할 때마다 꺼내 쓰는 ‘전가의 보도’로 삼을 것을 미리 막아보겠다는 것이죠. 김 대표는 당 차원에서 추경에 협조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당으로선 아직까지 추경에 대해선 논의한 바 없어. 추경을 하려면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생각해야 하는데, 오늘 아침 다른데 물으니 전부 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인 3.1%에서 내리는데 정부만 왜 안 내리느냐고들 해. 정부가 (성장률이) 0.3%포인트 정도 모자를 거라고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그걸 달성하기 위해 추경한다는 게 더 합리적일 것이지”라고 말했습니다.
경제 할배의 특강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김 대표는 “결국 오늘날 브렉시트가 발생한 배경에는 세계적 추세인 양극화 문제가 제대로 해결 안 된데 따른 것”이라고 진단한 뒤 “정부는 ‘별 영향 없다’ ‘괜찮을 것’이라고 얘기만 하지 말고 제대로 실상을 파악해 국민이 우리 경제에 대한 쓸데 없는 불안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게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라고 지적했습니다. 당 관계자는 “(김 대표가) 브렉시트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보다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며 “영국 경제는 제조업의 붕괴 이후 금융 중심으로 바뀌어 갔고 그 여파로 중산층이 붕괴됐고 이번 브렉시트도 저소득층이 적극 나서 이뤄진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김 대표는 결국 경제민주화 전도사답게 브렉시트의 원인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셈입니다.
주말 동안 곳곳에서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 한국 경제에 끼칠 영향에 대한 예상이 쏟아지고 불안 심리를 자극할 테고 정부는 그 틈을 이용할 것을 미리 막는 동시에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한국판 브렉시트’라는 위기에 빠질 지 모르는 경고를 보내기 위해 ‘불금’ 임에도 경제 할배가 특강을 한 것이죠.
앞서 21일 국회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김 대표는 대기업을 ‘거대 경제 세력’으로 지칭하며 대기업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양극화 해소를 위해 포용적 성장을 제시하며 그 방안으로 ‘기본소득제’를 언급했습니다. 그가 ▦재벌 총수 전횡을 막기 위해 소액주주, 근로자의 이사회 참여를 보장하는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불공정거래에 대해 공정위가 검찰 고발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 폐지 등을 추진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앞으로 ‘한국판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를 더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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