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7일(현지시간) 미 CBS와 인터뷰에서 북미대화 추진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당신(북한)이 나에게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기를 귀 기울이고 있다”고 답했다. 며칠 전 이집트에서 “북한이 언제 진지한 대화를 할지 결정은 북한에 달렸다”고 했던 그가 다시 북한에 공을 넘긴 것이다. 최근 대북 정책 기조를 ‘최대 압박’의 강경 일변도에서 ‘관여(engagement)’ 병행으로 선회한 미국이 정작 대화 테이블 앞에서는 북핵 인정 불가라는 명분론을 내세운 셈이다.
북한은 이에 노동신문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에 목말라 하지 않는다, 급한 건 미국”이라고 맞받았다. 노동신문은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미대화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을 거론하면서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트럼프 패거리들이 호들갑을 떨어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대화 가능성을 열자 짐짓 여유를 부리며 대화 주도권을 잡으려는 포석의 허장성세로 보인다.
어쨌든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위한 탐색전에 돌입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활짝 열린 남북 간 대화 국면이 북미대화로 연결될지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정작 당사국은 대화의 입구에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전쟁불사로 치닫던 북미가 바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 국면으로 진입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던 과거 경험에 비춰 보면 아주 새로운 장면도 아니다.
북미대화로 바로 진입하기 위한 여건이 불비한 것도 사실이다. 올림픽 기간 중단시킨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재개는 인화성 높은 요인이다. 북한이 대화를 통해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이나 제재 완화를 노린다는 의심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 연휴 막바지에 평창올림픽 메인 프레스센터를 찾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만 마음이 급한 것 같은데, 우리나라 속담으로 치면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고 속도 조절에 나선 것도 이런 조심스러운 상황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양국은 최악의 충돌 위기에서 맞은 국면 전환의 기회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6일(현지시간) 개막한 뮌헨 안보회의에서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각국에 촉구했다. 북미는 대화의 입구에서 명분을 앞세운 기 싸움에 매달리기보다 평화적 해법을 염원하는 국제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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