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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친정엄마

입력
2017.01.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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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제 막 출발했지. 아이야, 아까는 시장이었어. 오징어 살라고. 회 떴어. 돈이 썩어빠졌나. 왜 밥을 나가서 먹나. 나가봐야 미원 범벅한 식당들밖에 더 있나. 니네 집 도착하면 배랑 깻잎이랑 썰어 넣고 오징어회 한 그릇씩 먹으면 되는 기지. 밥이나 해놔. 물 많이 넣어. 저번처럼 꼬두밥 해가지고 먹지도 못하게 하지 말고. 나이가 멫인데 아직도 밥을 그래 못하나. 그래가꼬 아는 어떻게 키울 낀데? 살림을 못하면 글이라도 부지런히 쓰등가. 요즘은 아예 책도 안 나와요. 니가 책이 안 나오니 내가 어디 가서 할 말도 없고. 아줌마들이 다들 니 요즘 우예 사나 묻는데, 내가 할 말도 없고 그러니 재미도 없고. 니 언니는 요즘 정신이 없어. 아가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까 지도 똥줄 타지. 어디건 대학은 가야 할 거 아이나. 지 동서네 둘째가 이번에 건국대 수의학과, 거기 원서 넣었잖나. 붙을 거 같대. 그 집 시아버지가 집안에 의사 났다고 그래 좋아하나봐. 우째 그렇게 좋은 델 다 가나. 그르니까 니 언니가 안달이 안 나나. 지 아들 공부 좀 한다고 그래 자랑했는데 거보다 못 가면 자존심 왕창 상하는 거지. 내 꼴좋다 그랬다. 그래서 자식 자랑 막 하는 거 아이야. 니도 나중에 어쩌는지 내가 다 볼 거야. 니, 조카들 받아쓰기도 제대로 못한다고 그래 숭 봤제? 내 다 지켜볼 거야. 니 딸 어떤지. 우리는 네 시간 있으면 도착해. 괜찮아. 천천히 가고 있어. 여기는 비도 안 와. 가시나, 웃기고 있네. 칠십 넘으면 운전도 못하는 줄 아나 보네. 아주 우리를 늙었다고 꽁 무시하고 있어. 시끄라, 고마. 안 졸아. 가만가만 갈 거야. 김치통이나 씻어놔. 묵은 김치랑 잔뜩 가져가니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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