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정부가 올해부터 담뱃값을 2,000원 올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담배에 붙는 각종 세금과 부담금이 기존에는 한 갑에 1,550원이었는데, 이를 3,323원으로 올리겠다는 것이었죠. 정부는 “담뱃값을 올리면 담배소비량이 줄게 될 테니 국민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나라 곳간을 ‘골초’가 내는 세금으로 채우려는 것이냐는 불만이 상당했는데, 정부는 초지일관 국민의 건강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 입장은 매우 난처한 상황입니다. 1월과 2월 각각 1억7,000만갑, 1억8,000만갑으로 떨어졌던 담배판매량이 6월 들어 3억갑이 넘는 등 예년 수준을 금세 회복해버린 겁니다. 정부는 당초 담뱃값을 2,000원 올리면 2014년에 비해 담배 판매량이 34% 가량 적은 28억8,000만갑이 되고, 남성 흡연율도 8%포인트 떨어진다고 했었는데요. 지금 추세라면 연말까지 33억갑의 담배가 팔릴 전망이 나오니, 정부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간 꼴이 됐습니다. 세금 올리려고 엉터리 예측을 가지고 국민들을 속인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이런 가운데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기름을 부었는데요. 5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담뱃값 인상의 세수 증대 효과에 대한 질의를 받고, “담뱃갑 경고 그림이 같이 입법화됐으면 (판매량이) 34% 줄었다고 보는데, 올해 25% 정도 줄었다”고 답을 한 겁니다. 담뱃갑에 경고 그림이 안 들어가서, 정부 예상보다 담배 판매량이 덜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최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불만들이 들끓습니다. 애초 가격을 올릴 때 경고 그림 얘기는 한 번도 없었다는 거죠. 게다가 정부는 지난 9월 예산안 편성 당시 슬그머니 올해 담배판매량 감소율을 당초 34%에서 25.1%으로 줄여, 32억8,000만갑으로 조정했습니다. 스스로 수요예측을 고쳤다는 건 ‘가격으로 흡연율을 잡겠다는 정책은 실패했다’는 걸 자인했다고 봐야겠는데요. 부총리가 이를 두고 담뱃갑 경고 그림 탓을 하는 게 보기 좋을 리가 없습니다.
최 부총리가 언급한 담뱃갑에 경고 그림 표기를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내년 12월에나 시행될 전망입니다. 과연 그 이후에는 정부의 생각만큼 흡연자가 줄어들지 지켜볼 일입니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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