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한 표’를 행사하는 날이지만 장애인 유권자들은 여전히 투표권 행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표 장소까지 가는 길도 고될뿐더러 힘겹게 투표장에 도착해도 편의 시설이 미흡해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사전투표일인 지난 4일 오후 직접 방문한 서울 용산구 원효로2동의 주민센터와 서울 중구 신당동 주민센터는 사전투표소가 각각 3층과 지하 강당에 마련돼 있었다. 가파른 언덕, 비포장도로를 지나쳐 투표 장소에 어렵게 도착해도 투표소에 장애인 엘리베이터마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의 박미애 간사는 “접근성이 떨어져 장애인 유권자가 투표소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유권자를 위해 1층에 임시투표소를 설치하고 안내원을 배정하고 있다. 하지만 임시투표소가 있어도 비밀투표, 직접투표가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투표소에 도착한 장애인 유권자는 투표사무원 1명과 참관인 1명의 도움을 받아 기표를 한다. 기표한 용지는 투표사무원이 넘겨받아 투표함에 넣는다. 유권자가 최종으로 투표용지를 제출하는 게 아닌 일종의 간접투표인 셈이다.
서울시가 배치한 투표소 수화통역사만 28명… 어디 배치됐는지 관계자도 몰라
장애인을 위한 편의제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전국 시·도별 선거관리위원회는 수화통역사, 장애인 유권자를 투표소까지 무료로 이동시켜주는 콜택시 사업 등을 시행한다. 그러나 홍보 부족으로 대상자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선관위 홈페이지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투표소에서 편의제공이 이뤄지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
서울시에는 지난해 4월 총선 때부터 선거일에 한국농아인협회의 지원을 받아 투표소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했고, 이번 대선에도 수화통역사 28명의 지원을 받았으나 서울시조차도 이들이 어디에 배치됐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역 선관위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편의제도가 정확히 어느 곳에서 실시되는지는 해당 지역에 직접 알아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5일 서울 중구 신당동 주민센터 입구에서 수화통역사로 활동한 전정주씨(40)는 투표사무원임을 알리는 목걸이 이름표 위에 매직으로 ‘수화통역사’라고 적어야 했다. 전씨는 “지난해 총선부터 수화통역사로 일하고 있으나 함께 활동하는 수화통역사들이 어느 곳에 배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며 “혹시나 투표소를 찾는 농인 분들을 위해 직접 이름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선관위 관계자는 “일괄적 배정이 아닌 수화통역사가 사는 지역 근처로 배치하다 보니 구체적인 배정 현황을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는 참정권 보장이 필수 권리임을 강조한다. 사전투표 두번째 날이었던 지난 5일 서울 종로 삼청동 주민센터에서는 불편을 겪는 장애인들이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박 간사는 “매 선거 때마다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지만 개선은 더디고 있다”며 “수화통역이나 점자 안내가 장애인에게 당연히 필요한 권리임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빛나 인턴기자(숙명여대 경제학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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