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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 '목소리 소설'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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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 '목소리 소설' 개척자

입력
2015.10.0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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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증언록 담은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 인터뷰 기반 문학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벨라루스 출신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가 선정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8일 밝혔다. 한림원은 알렉시예비치의 “다성(多聲)적 작품세계, 이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에 대해 상이 주어졌다고 발표했다. 민스크 EPA=연합뉴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벨라루스 출신의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가 선정됐다고 스웨덴 한림원이 8일 밝혔다. 한림원은 알렉시예비치의 “다성(多聲)적 작품세계, 이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담은 기념비적인 작품”에 대해 상이 주어졌다고 발표했다. 민스크 EPA=연합뉴스

벨라루스 출신의 여성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가 저널리스트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언론인 출신 작가가 수상한 적은 많지만 허구가 아닌 온전한 논픽션 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스웨덴 시각 8일 오전 11시에 발표된 당선 소식에 “다림질하다가 전화를 받았다”며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이반 부닌,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등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시아 작가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한편으론 정말 환상적인 기분이지만 동시에 혼란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자 출신의 알렉시예비치는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여성들을 인터뷰해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에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형성해 왔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에 대해 “작가는 지난 30~40년 간 소련과 소련 붕괴 후 개인들의 모습을 부지런히 그림으로써 사건의 역사가 아닌 감정의 역사를 만들어냈다”며 “그가 한 수 천 건의 인터뷰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인간 존재의 역사를 알려주는 동시에 감정의 역사, 영혼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당시 군인이던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군에서 동원 해제된 후 가족들은 아버지의 고향인 벨라루스로 돌아가 정착했고 부부가 함께 교사로 근무했다. 수도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 언론학과에 입학한 그는 1972년 졸업 후 브레스트 지방 베레사의 지역신문사 기자와 공립학교 교사로 동시에 근무했다. 이듬해 민스크 지역신문에 취직한 그는 저널리즘에 온전히 종사하기로 결심한다.

1976년 문학잡지 ‘네만’에서 일하며 첫 책 ‘나는 마을에서 떠났다’를 집필했으나 시골 주민의 도시 이주를 금한 소련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내용 때문에 출판되지 못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알렉시예비치는 단편, 에세이, 르포 등 다양한 문학 장르에 도전했다. 당시 벨라루스 작가 알레스 아다모비치가 ‘집단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영역을 개척했는데, 이는 알렉시예비치가 허구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삶을 묘사하는’ 문학에 주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수년 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논픽션의 형식으로 쓰되, 소설처럼 강렬한 매력을 가진 글로 재탄생시키는 이 방식은 훗날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한 인터뷰에서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실제 삶에 가능한 한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고, 나를 고문했고 내게 최면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종이 위에 포착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 증거와 문서를 사용하는 장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내가 세상을 듣고 보는 방식입니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모인 합창, 매일의 세부사항이 만드는 콜라주이지요.”

1983년 탈고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는 작가의 독특한 집필방식이 처음으로 도입된 작품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2차대전에 전투원, 당원, 공무원으로 참전한 소련 여군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참전용사들을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조국전쟁(2차대전의 러시아식 표현)의 영광에 먹칠을 했다”며 책 출판을 금지했다. 작가는 검열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했지만 결국 일자리까지 잃고 말았다. 책은 2년 뒤 소련에 페레스트로이카가 도래한 1985년에야 모스크바와 민스크에서 동시 출판됐고, 러시아에서만 200만부 이상 팔리며 독자와 비평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국내에는 8일 문학동네서 번역 출간했다.

이후 ‘아연 소년들’ ‘죽음에 매료되다’ 등을 통해 전쟁의 광풍에 희생된 어린이, 여성, 남성의 다양한 목소리를 채집해온 작가는 1997년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 참사를 다룬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집필한다. 10여년 간 100명 이상의 원전사고 피해자들을 취재해 쓴 이 책을 독일 신문 ‘프랑스푸르느 룬트샤우’는 “애도와 고발로 이뤄진 가공할만한 진혼곡”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을 출판한 뒤 작가와 모국 벨라루스의 사이는 급속히 악화돼 그의 모든 책이 절판되고 학교 교과과정에서도 삭제됐다.

2011년 이 책을 국내 번역한 김은혜씨는 “웬만한 끈기가 없으면 읽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참담한 이야기”라며 “그러나 누군가 인류가 살아온 방식을 기록해야 한다고 할 때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알렉시예비치는 현재 새 책 ‘영원한 사냥의 훌륭한 사슴’의 마무리작업을 하고 있다. 사랑 이야기다. 다양한 세대의 남자와 여자가 그들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동안은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죽이고 죽는지에 대한 책을 써온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게 인간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이제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지 쓰고 있어요. 사랑은 우리를 세상으로 데려갑니다. 나는 사랑들을 사랑하고 싶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만요.”

오미환 선임기자 mhoh@hankookilbo.com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김혜영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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