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지현 기자

등록 : 2016.08.31 19:01
수정 : 2016.09.01 17:13

'몸매 강박' 사회… 나는 왜 내 살을 혐오하나

[사소한소다] <5> 완벽한 몸(매)

등록 : 2016.08.31 19:01
수정 : 2016.09.01 17:13

# "내 몸은 완벽하지 않아."

여대생 나혜리(24·가명) 씨는 종종 자신의 몸을 초라하게 느낀다. 키 163cm, 몸무게 50Kg인 그는 주변에서 ‘날씬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많이 먹어도 아이돌처럼 날씬한 몸매 ”를 원한다.

그러려면 몸의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기초 대사량이 증가한다. 나씨는 탄탄한 근육을 만들기 위해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1주일에 두 세번 개인 훈련(PT)도 받는다. 아침에 물 1잔, 점심에 야채 위주 비빔밥에 고추장 조금, 저녁에 고구마 말랭이를 먹으며 식단관리도 철저히 한다.

그는 “잠들기 전에 배고프고 힘들어 많이 울지만 살을 빼고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몸무게 48kg'을 위해 무작정 굶으며 살을 빼던 시대는 지났다. 체성분 분석기술이 발달하며 단순한 질량인 '몸무게' 보다 몸을 구성하는 체지방량과 근육량을 조절해 균형 있고 탄탄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 체형에 맞춰 체계적 운동을 하고 식단관리로 건강한 몸을 만들자는 몸짱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왜 다이어트 스트레스에 시달릴까

미용업계는 여성의 몸을 다양한 용어로 평가하며, 그들이 규정한 아름다운 몸매의 기준을 제시한다. 한규민 디자이너 szeehgm@hankookilbo.com

마르고 건강한 몸매… ‘깐깐한 기준’

여성이 몸, 정확히 말해 ‘몸매’를 가꿔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매는 '자기관리'의 지표로 이어진다.

요즘 미용업계에서는 체지방이 적고 근육이 많은 탄탄한 몸매를 갖춰야 '먹방 요정'으로 대변되는 여성스타처럼 많이 먹어도 ‘예쁘고 건강한 몸매’가 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쇄골과 발목이 앙상하고 허벅지 틈은 붙지 않는 '마른 몸매'를 위한 운동과 시술을 권한다. 탄탄한 근육질에 발목과 팔목, 쇄골을 앙상하게 유지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 김유경(22)씨는 “트레이너가 남자들은 쇄골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며 쇄골운동법을 권했다”며 “처음에는 ‘쇄골까지 살을 빼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지만 이제는 나도 모르게 쇄골에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예비신부 김현정(32)씨도 “요즘 웨딩드레스를 입을 때 쇄골 부위와 팔뚝에 살이 없어야 신부가 예쁘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이 부위가 도통 살이 빠지지 않아 6주 남은 결혼식을 앞두고 해당 부위에 '바디보톡스' 시술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나혜리(24·가명)씨는 일주일에 두번 체성분분석기를 통해 체지방량과 근육량을 측정해가며 몸매를 관리한다. 나씨는 “주위에선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고 얘기해 주지만 기계로 측정하면 체지방도 줄지 않고 근육도 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씨 제공

우리는 왜 ‘몸매평가’에 익숙한가

여성에게 ‘완벽한 몸매’를 요구하는 사람은 가족, 친구, 직장동료처럼 가까운 사람일 경우가 많다. 취업 준비중인 김자연(25ㆍ여ㆍ가명)씨는 시도 때도 없이 몸매를 평가하며 살 빼기를 강요하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스트레스다. “요즘 쇄골이 사라진 것 같다”, “뒷모습이 아줌마 같다”, “얼굴에 점점 살이 쪄서 라인이 없어졌다”, “청바지 입은 모양이 살지 않는다”, “붙는 옷을 입지마라” 등등 김씨가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의 어록’이다. 김씨는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긍정적 자극보다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둘째 아이를 출산하며 체중이 미혼 시절보다 9kg 늘어난 박가현(36ㆍ여)씨도 주변 성화 때문에 모유 수유를 끝내자마자 집에서 하는 운동인 홈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그는 “친정 어머니부터 남편, 가족, 친구들까지 만나는 사람마다 갑자기 살이 찌면 건강에 좋지 않으니 살을 빼라고 한다”며 “출산 후 체중 증가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마치 몸이 망가진 것처럼 말해서 불쾌하다”고 토로했다.

우리 사회는 왜 여성의 몸을 평가하고 혐오하는 일에 익숙할까. 여기에는 외모를 매개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우리 만의 친교 특성이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에서 일하는 정슬아씨는 “우리는 외모 평가를 친밀함의 척도로 여겨 외모를 주제로 말을 걸며 관계를 맺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즉, 타인의 몸매나 외모에 대한 칭찬과 비난이 모두 안부 인사처럼 쓰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칭찬과 비난이 모두 ‘독’이 되고 있다. 정씨는 “뚱뚱하거나 날씬하다 등 이분법적 언어로만 규정해 다양한 말로 몸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며 “이런 말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평가를 받는 대상 뿐 아니라 주변인들에게도 선입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김자연(25·가명)씨는 매일 먹는 음식을 사진으로 남기고, 음식의 양은 스마트폰 어플을 활용해 기록한다. 살을 빼려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김씨 제공

“체지방 과도하게 줄이면 건강 이상”

특히 몸매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정상 체중의 여성들까지 다이어트 강박에 시달리게 한다. 최근 걸그룹 오마이걸의 멤버 진이(21)는 거식증 및 건강 상 이유로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혹독한 체중관리가 원인이다. 이용제 강남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마른 몸매 강박에 시달리는 여성들은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는 지,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 때문에 우울감이 높고 자존감이 떨어져 섭식장애 등을 앓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몸’과 '건강한 몸'은 다르다. 피하 지방이 아닌 복부 지방을 줄이고 허벅지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대사질환 위험률을 줄일 수 있다. 이 교수는 “여성들은 대개 20~30%의 체지방율을 보이는데 복부지방량이 대사질환 발병에 영향을 주며 피부 아래 피하지방은 질병을 유발하지 않는다”며 “건강을 위해 체지방을 과도하게 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완벽한 몸매는 존재하지 않는다”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비의 폭식증을 치료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페미니스트이자 정신분석 심리치료사 수지 오바크는 저서 '몸에 갇힌 사람들'에서 완벽한 몸은 없다고 단언했다. 현대 여성들은 패션, 미용, 영화, 성형수술, 다이어트 산업이 만든 이미지들로 자신을 평가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TV속 모델조차 조명, 카메라, 포토샵 등 기술에 힘입은 왜곡된 이미지로 재현된다. 이는 곧 우리가 상상하는 '완벽한 몸의 이미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도한 다이어트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오바크는 ‘여성 스스로 완벽한 몸을 좇는 불안에서 벗어나라’고 조언한다. 그는 “몸을 개인이 창조할 수 있고 창조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괴로움을 불러 일으킨다”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은 즐거운 일인 만큼 치명적인 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다양성으로 빛날 수 있다는 얘기다. 오바크의 주장은 명료하다. “각자의 몸을 강요된 열망을 투영하는 곳이 아니라 각자가 깃들여 사는 장소로 여기자.”

자,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바꿔 던져보자. 나의 몸은 행복한가.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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