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도 '천송이 코트' 살 수 있나
특정 해외직판몰에서만 구입 가능 대형 업체선 여전히 사기 어려워
개인정보유출 사고 늘어나며 공인인증서 대체 수단 마련 요원
박근혜 대통령이 끝까지 자리를 지킨 ‘끝장토론’ 형식으로 전국민의 눈길을 끌었던 정부의 규제완화 드라이브가 27일로 100일을 맞는다.
박 대통령이 3월20일 규제완화 끝장토론에서 제시된 과제 중 41건을 연내에 처리하겠다고 천명한 이후 정부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그 결과 자동차 개조가 가능해졌고, 외국인들이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있는 방법도 마련됐다.
그러나 일반 시민과 기업들이 규제 완화에 대해 느끼는 체감도가 여전히 낮은 편이다. 100일 전 제시된 과제 중 상당 부분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으며, 구체적인 대책이 나온 과제들도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 탓에 좌초되기도 했다. 당시 관심이 높았던 과제들을 중심으로 진행상황을 정리했다.
천송이 코트 구입 가능해졌다지만
천송이 코트 구입 가능해졌다지만
외국인이 공인인증서가 없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와 같은 국산 인기제품을 해외에서 구입할 수 없는 불편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공인인증서는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우리나라에만 있는 규제)로 끝장토론에서 규제개혁 1호 대상으로 부각됐다. 쇼핑몰 업체와 결제를 담당하는 금융사 간의 갑론을박 끝에 결국 이달 24일 문을 연 온라인 해외직판 쇼핑몰 케이몰(Kmall)24를 통해 문제의 천송이 코트 구입이 가능해졌다. 이 곳에서는 150개 중소기업이 1,700개의 상품을 판매하는데 공인인증서 없이도 신용카드나 인터넷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면 천송이 코트와 같은 한류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공인인증서 사용을 의무화하던 기존 전자금융감독규정시행세칙을 지난달 개정했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에서 판매하는 제품이나 케이몰24에서 취급하지 않는 상품은 여전히 외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인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거나 구매대행 사이트나 보따리 장수를 통해 가능할 뿐이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한국상품에 관심이 있는 중국인들이 현지에서 온라인 구매가 어려워 한국을 방문하는 기회에 평소 관심 있는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모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당장 실현될 듯했던 공인인증서 폐지도 요원해 보인다. 국내 신용카드 회사들은 대체 보안수단을 마련하지 못해 당분간 공인인증서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카드회사 관계자는 “개인정보유출 사고가 빈번해지면서 다른 보안수단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정부나 신용카드사와 공인인증서 폐지 문제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자동차 튜닝 푸드트럭 허용
정부는 지난 17일 자동차 튜닝(개조)산업 진흥대책을 발표했다. 튜닝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산업적으로 적극 육성하고 대상도 캠핑카와 푸드트럭 등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3월 규제완화 토론 자리에서 화물차를 푸드트럭으로 개조하는 것을 금지한 규제를 풀어달라는 요청이 나온 후 관련 규제개혁을 서두른 결과다. 승합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소형 트럭을 생계형 음식점으로 개조한 푸드트럭도 8월부터 허용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튜닝산업 육성 의지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튜닝산업은 각종 규제로 성장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향후 10년간은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튜닝부품을 사용한 차량에 대해서도 자동차 제조사가 보증하도록 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자동차 회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제조사들이 순정품이 아니라 튜닝부품을 사용할 경우 보증수리를 거부하기 어렵도록 사고원인 입증 책임을 제조업체가 지도록 할 계획이다.
학교 옆 호텔 건립은 불허
학교 부근에 관광호텔 건립을 허용하는 문제는 학부모들의 반대 등으로 진전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끝장토론에서 관광숙박업이 학교보건법에서는 유해시설로 규정돼 청년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다는 한 기업인의 지적에 대해 “현실에 안 맞는 편견으로 거의 죄악”이란 강경한 표현을 구사하며 관계부처들이 적극적으로 공론화해 줄 것을 주문했다. 서울 양평동 초등학교에서 180m 떨어진 곳에 관광호텔을 건립할 수 없게 된 한승투자개발 측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때문에 금방이라도 호텔 건립이 허용될 것처럼 보였다. 안전행정부에서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영등포구에 사업 승인을 권고했고, 문화체육관광부도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호텔 건립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전폭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호텔 건립은 결국 무산됐다. 영등포구청은 지난 12일 “주민들이 주거권과 학습권 등을 보호해달라며 집단민원을 제기하는 등 호텔 건립에 반대해 불허했다”고 밝혔다. 민원을 무시하고 승인해줬을 경우 공무원들이 향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한항공이 서울 도심에 7성급 호텔을 지으려는 계획도 같은 이유로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호텔 건립 무산을 두고 지자체와 교육청의 과도한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가 규제 완화를 명분으로 밀어 붙이기 행정을 한 결과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기업들의 돈벌이 때문에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 받아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해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밝혔다.
택배차량 증차 구체방안 깜깜
택배업계가 차량 부족으로 서비스 제공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건의한 택배차량 증차 문제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택배회사들이 회원사인 통합물류협회는 정부에 1만2,000여대 증차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는 후속조치로 지난 5월 ‘2014년 화물자동차 운수사업 공급기준’을 고시하고 연말까지 구체적인 공급방법 및 조건, 절차 등을 확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택배차량 증차에 대해 개인 사업자들이 반대하는 등 업체간 이견이 만만치 않아 벌써부터 연말까지 구체적 내용을 담은 추가 고시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신규 공급대수와 대상 등 핵심적인 사안은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협회는 증차 차량을 개인이 아닌 회사에 배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정부는 화물업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방향을 찾고 있다. 택배차량을 원하는 개인 사업자가 많은데다 회사에 몰아주면 대기업인 택배회사에 대한 특혜 논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 때문에 2012년 증차 때도 개인별로 증차를 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택배업체들이 규제완화를 앞세워 자구책 마련 없이 증차에만 의존하려는 움직임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건의가 이뤄진데다 중요 수용과제에도 포함돼 있어 국토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고시는 1년간 유효하기 때문에 내년 5월까지만 결정하면 되지만 최대한 연내에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업계는 9월 이전에 정부가 증차문제를 매듭짓기를 바라고 있다. 인터넷 쇼핑시장의 급성장으로 택배수요가 늘고 있는데다, 연간 최대물량을 처리하는 추석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이것저것 너무 고려하는 것 같다. 연내에 만족할 성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항만배후부지 공장설립 완화
인천 부산 등 항만 배후부지에 공장설립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해양수산부는 현재 관련 규정인 ‘항만배후단지 관리지침’을 개정 중이다. 물류업체에 다소 유리하게 돼 있는 규정을 손 봐, 제조업체의 진입을 돕겠다는 것. 현재 입주기업 평가 항목에는, 물동량에 대한 배점이 높아 물류업체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제조업체가 상대적으로 앞서는 고용량, 설비, 투자 부분의 배점을 높이고 물동량 항목은 상대적으로 낮추는 식의 방안이 포함됐다. 또 해외에 공장을 갖고 있던 기업이 국내 항만 배후단지로 들어올 경우, 가점을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도 담겼다.
다만 인천항의 경우는 제도 개선 이후 제조업체가 몰리며 수도권 과밀억제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고려해 개정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다음달 중순쯤 발효될 예정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물류산업과 관련된 제조업체들이 들어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개정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사업자가 외국인을 고용할 경우 당국에 신고하는 절차가 중복되고 복잡해 불편함을 호소했던 사안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해결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규제완화 토론 이후에 신고를 간소화하기 위해 법무부와 통합시스템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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