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인터넷상 명예훼손글에 대한 제3자 신고가 허용된다. 지금까지 당사자나 대리인을 통해 신고했던 범위가 확대되면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일었지만,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예외규정 등 별도의 보완책이 제시됐다.
■ 방심위 "법적 균형+사회적 안전망 필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10일 오후 전체 회의를 열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개정안을 심의·의결해 온라인 명예훼손글에 대한 제3자 신고를 허용했다. 개정안은 오는 16일 공표·시행된다.
현행법상 온라인 명예훼손글은 당사자나 대리인이 신청해야 방심위의 심의를 받을 수 있었다. 정보통신망법 70조3항에 따라 명예훼손을 제3자 신고가 가능한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했지만 심의 규정은 당사자나 대리인만 신고할 수 있는 '친고죄'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기존 심의 규정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과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방심위는 상위법에 맞게 수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제3자 신고로도 삭제·접속차단 등을 심의하게 됐으며 필요한 경우 위원회 직권으로도 심의가 개시된다.
방심위는 이번 개정안이 성행위 동영상이나 집단 괴롭힘(왕따) 글처럼 당사자 신고가 어려운 콘텐츠에 대처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온라인에서는 차별 및 비하 내용이 담긴 혐오 표현이 꾸준하게 늘고 있다. 방심위가 온라인 혐오 표현을 찾아내 콘텐츠 삭제·특정 계정 이용정지 등 시정요구를 한 건수는 2013년 622건, 지난해 705건, 올해(11월 말 기준) 833건으로 매년 약 10씩 증가했다. 올해는 전년보다 18.2% 늘어 증가폭이 더욱 커졌다.
온라인 혐오 표현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확산 및 재창조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남충(한국 남성을 벌레에 비유한 표현)' '김치녀(허영심이 심한 여성)' 등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와 '메갈리아' 사이에서 촉발된 '성(性)간 댓글전쟁'은 이러한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명예훼손은 진위 여부를 떠나 발생하기만 해도 파급력이 크기 때문에 개인 또는 집단의 피해가 커질 수 밖에 없다"며 "제3자 신고라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통해 무분별한 온라인 범죄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표현의 자유 보장…공인 예외규정 추가
일각에서는 제3자 신고를 악용하는 사례가 급격히 늘 것으로 우려해 왔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풍자글이 극우 단체 등의 신고로 대거 심의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비판 기능 축소와 여론 통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상 표현의 자유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제21조 1항에 기인한다. 그러나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 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강제 규정을 명시하고 있어 강제 모순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자 신고가 더해지면 사실상 강제 규정이 더욱 강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단서 조항이 있지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자체가 위축돼서는 안 된다는 것.
이를 의식한 듯 방심위는 이날 '명예훼손 관련 통신심의제도 개선안'을 함께 의결해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 신청은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만이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개정안 논의 기간에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에 대한 비판·풍자글이 극우 단체 등 신고로 대거 심의 대상에 올라 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일자 이를 반영한 것이다.
방심위는 공적 인물의 범위를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정당 대표, 최고위원 및 이에 준하는 정치인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의 공공기관 중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대규모 공공기관의 장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의 금융기관의 장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의 기업 또는 기업집단의 대표이사 등으로 정했다.
언론에 공개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 등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도 제3자 명예훼손 신고가 제한된다. 사인이지만 중대한 범죄 행위로 사회 이슈의 중심이 되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박효종 방심위원장은 "공인이 아닌 보통사람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무수한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특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최근에는 개인 성행위 동영상 유출 피해자가 문제의 사이트를 일일이 찾아내 신고하는 것에 수치심과 고통을 느낀 나머지 아예 모니터링 및 삭제 요청 민원을 대행하는 업체를 찾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것이 위원회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채성오기자 cs86@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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