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프라스 "유럽과 결별 아니다"
유로존 잔류 의지 거듭 피력
앞날 걱정하는 목소리도 곳곳서
EU 국가들 유감 표명 잇달아
5일 치러진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국제 채권단 제안에 반대하는 표가 압도적으로 많자 그리스 국민들은 물론 유럽국가들의 표정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투표 결과에 누구보다 먼저 환영의 목소리를 낸 사람은 역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였다. 치프라스 총리는 5일 저녁 TV 생중계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 승리를 축하하자”며 “우리는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민주주의가 위협 받을 수 없음을 증명해 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이 오늘 위임한 권한은 유럽과 결별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해법을 찾도록 협상력을 높이라는 것임을 전적으로 알고 있다”며 유로존에 남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정부를 지지하는 그리스 국민들도 개표 결과가 전해지자 의회가 있는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속속 모여 탄성을 터뜨렸다. 이들은 그리스 깃발을 세차게 흔들며 국제 채권단 제안에 반대한다는 뜻의 “오히, 오히, 오히!”(OXIㆍ아니오)를 연신 외쳤다. 길거리에서 춤을 추며 폭죽을 터뜨리는 이들도 여럿 등장했다.
환영 집회에 참가한 20대 청년 이아니스 지코베시스는 AP에 “지난 5년간 지속돼 온 긴축이 너무 많은 이들을 빈곤으로 몰아 넣었다”며 “이러한 결정이 나온 것은 우리가 더 이상 궁핍 상태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프랑스어 교사였던 40대 클로에 팔라스카 역시 “나는 3년 동안 실직 상태로 지냈다”며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반대표를 던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털어놨다. 70대 콘스탄티노스 파파니콜라스는 “투표 결과는 그리스와 유럽이 역사의 새 페이지를 열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반겼다.
그러나 신타그마 광장 반대편에 모인 다수 국민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환영 집회를 바라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WP에 “반대 결과를 환영하는 이들이 지금은 행복해 보인다”면서 “내일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빈곤층 5,000여명을 돕고 있는 자선단체 관계자 룸피니 테르자키는 “사람들에게 보급할 음식과 약이 떨어져 간다”며 “전국이 마치 대지진을 겪은 것처럼 사람들이 하나 둘씩 굶주려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리스 국민들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도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시종일관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최대 채권국 독일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대변인을 통해 “(양대 채권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그리스 국민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 했다”고 짧게 소견을 전한 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6일 후속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마르쿠스 퍼버 기독교사회당(CSU) 의원은 이날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오히려 유로존의 연대가 강해질 것”이라면서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민주연합(FDP)의 알렉산더 그라프 람스도르프 의원도 “그리스가 제시한 새로운 구제금융안을 두고 협상에 나설 경우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아일랜드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 또한 투표 결과에 유감을 표했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체) 의장이자 네덜란드 재무장관인 예룬 데이셀블룸은 이날 성명을 내고 “투표 결과는 그리스의 미래에 매우 후회스러운 결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피터 카지미르 슬로바키아 재무장관은 “오늘 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온 뒤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시나리오가 한층 현실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EU를 반대하는 인사들은 그리스의 결정에 응원을 보냈다. 영국의 EU 탈퇴를 적극 주장해 온 영국독립당(UKIP)의 니겔 파라지 대표는 트위터에 “EU의 계획은 죽어가는 중”이라며 “이들의 경제적 위협에 대응한 그리스인들의 용기가 굉장하다”고 글을 썼다. 역시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스페인 급진좌파 정당 포데모스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대표도 트위터를 통해 “오늘 그리스 민주주의는 승리했다”며 환영했다.
신지후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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