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후 벌써 6번째
승인율 66%, 평균의 2배 수준
노동계 “5년간 조합원 96% 징계”
“강압적 노무관리 탓”
2011년 사측의 직장 폐쇄와 이어진 ‘노조파괴’ 이후 지금까지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유성기업에서 우울증을 앓던 노동자가 또다시 산업재해(산재) 판정을 받았다. 2012년 이후 6명째다.
1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현대자동차 엔진부품 생산업체인 유성기업 아산공장 직원 김모(39)씨의 정신질환 ‘중증의 우울병 에피소드’가 산재로 인정됐다. 공단 관계자는 “유성기업의 극심한 노사 분규와 금속노조ㆍ기업노조 간 갈등 등의 상황으로 근로자가 고통을 받아 온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아파 잠을 잘 이루지 못했던 김씨는 이듬해 여름부터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고 급기야 지난해 1월 한 달 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12년 3월 이후 유성기업에서 정신질환으로 산재 판정을 받은 노동자는 김씨까지 모두 6명이다. 이 중 5명이 우울증이나 우울병을 앓았다. 2012년 3월부터 김씨를 포함해 총 9명이 산재 승인을 신청했는데 1명만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심사 중인 2명이 산재 인정을 못 받아도 유성기업 정신질환 산재 승인율(66.7%)은 최근 5년 간 전체 정신질환 산재 승인율(36.7%)보다 2배 가까이 높다.
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다. 지난해 충남노동인권센터 심리치유사업단 ‘두리공감’이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아산ㆍ영동) 조합원 268명을 상대로 정신건강 실태를 조사한 결과 43.3%가 우울장애 고위험군이었다. 두리공감 활동가 장경희씨는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국민의 비율이 6.7%라는 게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산재 신청을 대리하는 이상철 노무사(노무법인 이유)는 “경제적 부담과 거부감 탓에 진단ㆍ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이런 집단 우울증의 배경으로 유성기업의 ‘가학적 노무 관리’를 지목한다. 금속노조 산하의 노조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유성기업은 2011년 4월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명분으로 5월 곧바로 직장을 폐쇄했고, 이에 항의하며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을 용역 경비를 동원해 폭행했다. 이듬해 노동자들이 복귀했을 때는 회사에 협조적인 제2노조(기업노조)가 들어섰고, 사측은 이들과만 교섭을 벌이면서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들을 차별해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 지회 측의 설명이다.
지난달 29일 강압적 노무관리를 비판하는 국회 토론회에서 김상은 변호사는 “기업노조 조합원은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보다 낮은 수위로 징계해 기업노조 조합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의 유성기업 문건이 있다”며 “유성기업은 노조 파괴 과정에서 징계권을 남용했다”고 말했다. 유성기업이 5년 동안 지회 조합원 96.5%를 징계하고 27.1%를 고소ㆍ고발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명숙씨는 “금속노조 조합원이 잔업 특근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임금 격차도 벌어졌다”며 “이런 상황이 노동자들의 고립을 야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지난달 17일 목숨을 끊은 유성기업 영동지회 소속 한모(42) 조합원의 죽음 역시 장기간 이어진 노사 갈등 과정에서 받아온 극심한 스트레스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철 노무사는 “사측의 노조 탄압에 따른 정신질환 산재는 일시적으로 한두 건 집중 발생하고 마는 게 일반적”이라며 “(유성기업처럼) 장기간 지속적으로 우울증 환자가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성기업 측은 “최근 근로자의 자살이 회사와 무관할 뿐 아니라 노사 갈등이 우울증 산재로 이어졌다는 것도 금속노조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 유성기업 정신질환 산재 판정 현황
<자료: 근로복지공단>
◆ 최근 5년 간 정신질환 산재 승인 현황
<자료: 근로복지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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