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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살랑대면…서해의 꽃 섬, 풍도에 가고 싶다

입력
2018.03.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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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이 천지를 이룬 풍도.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이 천지를 이룬 풍도.

경기 안산 대부동에 딸린 조그만 섬 풍도에 이맘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그 섬에 가고 싶어 인터넷으로 사람을 모으고 심지어 어선을 빌린다. 대체 무엇이 있길래? 풍도는 상상을 뛰어 넘는 꽃의 섬이다. 이때만큼은 풍도가 아니라 화도(花島)다.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풍도대극 등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군락을 이룬다. 천상의 화원이 바로 이곳이다.

개인적으로 풍도를 알게 된 건 야생화박사라는 별명을 지닌 이영수씨를 만나고부터다. 2007년 풍도를 다녀온 그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했다. 1년을 기다린 끝에 2008년 3월 마침내 풍도에 발을 디뎠다.

민박집 숙소에 짐을 풀고 뒷산에 올랐다. 마을회관을 지나 등산로가 나타날 때쯤 노란 복수초가 보였다. 일행은 복수초 한 송이에 넋을 잃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갔을까? 천지가 복수초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온 땅을 노랗게 색칠한 모습이다. 행여나 꽃을 밟지 않을까 사뿐사뿐 걸었다. 복수초는 복(福)과 장수(壽)를 의미하는 꽃이다. 스스로의 열로 눈을 녹이고 꽃을 피운다. 전국 각지에 분포하지만 그리 흔한 꽃도 아니다. 빠른 곳은 2월부터, 느린 곳은 5월까지 핀다.

눈 속에 핀 복수초
눈 속에 핀 복수초
하얀 꽃잎 하늘거리는 변산바람꽃.
하얀 꽃잎 하늘거리는 변산바람꽃.
노루귀의 앙증맞은 자태.
노루귀의 앙증맞은 자태.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풍도대극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풍도대극

복수초 군락에서 5분도 걷지 않고 노루귀 군락을 만나 다시 넋을 잃었다. 애기 솜털에 덮인 가녀린 줄기, 보라색과 흰색의 앙증맞은 꽃잎, 환상적인 자태의 노루귀가 여기저기 피어 있다. 바람에 꺾일세라 홀로 서지 않고 군락을 이뤘다.

조금 더 이동하니 철조망 사이로 눈이 쌓인 듯 희끗희끗한 게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변산바람꽃이다. 군락이라는 표현이 모자랄 지경이다. 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뒤덮은 변산바람꽃이 바람결에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유지라서 철조망을 둘렀다는데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맘은 누구나 같을 테고, 그랬다면 이 상태로 온전하지는 못했으리라.

풍도에서 만난 인연

마을로 내려와 해안에서 낙조를 보고 ‘기동이네민박’에 묵었다. 기동이네는 모두 네 식구였다. 첫째가 딸 미연이, 둘째가 아들 기동이다. 기동이는 뭍으로 유학을 가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미연이는 그렇지 못했다. 장애가 있는 아이였다. 혼자 일어나지 못했고,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눈은 해맑았고,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저녁 때 일행은 미연이 부모와 반주를 했다. 부부는 이 조그만 섬을 찾아 준 이들을 위해 성심껏 음식을 차렸다. 섬 사람들의 삶은 척박했다. 보통 남자는 어부로 지내고 여자는 밭농사를 책임진다. 다치거나 아파도 웬만하면 섬 안에서 해결한다고 한다. 기동이 아버지 역시 손에 큰 상처가 남아 있었다. 치료를 왜 안 하냐는 질문에 해맑은 웃음으로 ‘그냥 냅두면 나아요~’라고 했다. 서울에 와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의료봉사를 부탁했지만, 주민이 적다는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풍도의 아름다운 낙조.
풍도의 아름다운 낙조.

기억에서 멀어진 제3왕경호(멀고도 험한 풍도)

처음으로 풍도에 가던 2008년, 인천 연안부두에서 하루에 한 번 오전 9시30분에 출항하는 제3왕경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통통배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 크기는 한데…. 설마 저걸 타고 가는 거야? 좋지 않은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배 안에는 좌석이 없다. 쪼그려 앉아 편하게 다리를 펴지도 못한다. 선실은 지하 1층이라고 하기에도, 2층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두 개 층으로 되어 있다. 아직 바람이 차지만 변변한 난방장치도 없다. 마룻바닥에 깐 전기장판에 앉은 사람들은 큰 수확을 얻은 듯한 표정이다. 소음도 심하다. 갑판으로 나가면 엔진소리가 귀가 멍하다. 사방이 노출된 작은 배라서 멀미는 덜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커피와 라면, 때로 생굴을 팔기도 하는 작은 매점도 있다. 매점 아주머니와 왕경호 인부들은 돈독해 보였다. 거친 농담도 오가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이 좋게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관광객을 제외하면 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친하게 보였다. 육지로 나가는 교통수단이 제3왕경호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상에는 가깝지만 인천에서 풍도까지는 2시간이나 걸린다. 배가 작은 만큼 험난한 여정이지만, 제3왕경호에는 풍도 사람들의 구수한 인간미가 배어 있었다.

지금 풍도를 오가는 배는 서해누리호로 업그레이드되어 그나마 편해졌다. 섬 주민들은 신식배가 반갑겠지만 나는 왠지 왕경호가 그립다.

풍도에서 이것만은 지켜 주세요

①쓰레기 처리비용 3,000원씩 내세요

풍도에 도착하면 한 사람당 3,000원씩 쓰레기 처리비용을 내야 한다. 꽃 사진을 찍으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버리는 쓰레기를 주민들이 직접 치우는 비용이다.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지만 섬을 한 바퀴 돌고 나면 3,000원이 아니라 5,000원도 기꺼이 내겠다는 생각이 든다.

②기본은 지킵시다

꽃 사진을 찍는 것은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 에티켓은 지키자. 동네 어르신 얘기로는 한적한 곳에서 대변을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나물 뜯으러 갔다가 그것을 밟고 넘어져 허리를 다친 주민도 있단다. 처음 풍도에 갔던 2008년보다 지금은 꽃이 많이 줄었다. 본인만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주변을 삽으로 파헤치고 이른바 ‘세팅’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아예 돗자리를 펴기도 한다. 자리에 깔린 수많은 꽃들은 어쩔 텐가. 꽃을 뿌리 채 뽑아서 가져 가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 꽃도 풍도에 나고 자란 이유가 있지 않은가. 제발 그저 바라만 봐 주기를 당부한다.

③풍도에 올 때는 ‘정식으로’ 오세요.

‘정식으로’ 오라는 이유는 ‘편법으로’ 풍도에 들어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꽃피는 시기인 3월이면 대부도나 당진에서 배를 대절해 풍도에 온다. 다들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온다. 이들은 모두 당일치기다. 도시락까지 싸와서 섬에서는 돈 한푼 안 쓰고 쓰레기만 남긴다. 풍도 주민들이 반길 리 없다. 정기 배편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야 노선도 안정적으로 운영된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서해누리호가 매일 오전 9시30분이 출항한다. 배는 안산 대부도 방아머리항 여객선터미널(10시30분)을 거친다. 하루 한 차례 운항하기 때문에 풍도 여정은 필히 1박2일로 잡아야 한다. 풍도 출항 시간은 오전 11시30분, 혹은 정오다. 끝자리 짝수 날은 풍도, 홀수 날은 인근 육도에 먼저 정박하기 때문이다.

풍도 민박은 하룻밤 5만~7만원을 받는다. 섬에는 식당이 없고 민박집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식사비는 한 끼 5,000원 정도다. 풍도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주인이 없는 경우에는 가까운 민박집이나 주민에게 물어보면 어떻게 물건을 사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이원근 여행박사 국내여행팀장 keuni7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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