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풀이 하듯 예술 고등학교의 입시를 치렀다. 심사위원 자격이었다. 보통의 콩쿠르 심사라면 2~3주 전에 참여 의사를 타진해 오지만, 입시는 달랐다. 딱 이틀 전 소집을 명 받았다. 취조라도 하는 듯 수화기 저편에서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물어왔다. “수험생 제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입시를 위한 심사위원단 구성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다. 보안을 철저하게 지켜줄 것도 부탁 받았다. 허나 이 첩보는 채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생판 모르는 학부모가 입시 전 레슨을 받을 수 없겠냐며 애달피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의도가 빤히 보여 짜증이 치밀었다. 경연을 목전에 앞둔 레슨은 보통의 레슨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엔 선생이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연주를 선생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단호히 거절하며 ‘학생에게 불이익이 갈지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자 학부모가 펄쩍 뛰었다. 다만 내 음악세계가 궁금했고, 가르침을 받고 싶었던 순수한 의도였단다. 필요이상으로 내가 불순한 것이었을까. 노발대발 전화를 끊은 학부모는 다른 순수한 선생을 섭외할 수 있을까. 여러 생각으로 착잡했다.
입시 당일, 아침 8시 반 소집이었다. 심사위원들은 핸드폰부터 모조리 수거 당했다. 그리곤 비장한 문구의 서약서를 나눠 받았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 이번 입시를 치르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심사에 관련된 어떤 불미스런 행동도 하지 않겠습니다.’ 법정에서 낭독된다는 증인 선서의 무게와 다르지 않았다.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모두에게 경건한 침묵이 감돌았다. 실기 시험은 두 곳에서 진행되었다. 16명의 심사위원이 8명씩 둘로 나뉘어 배정 받았는데, A조는 스케일과 베토벤 소나타를, B조는 쇼팽 에튀드 두 곡을 듣게 되었다. 나는 제비뽑기를 통해 B조에 배정되었다. 학교 측은 채점의 특이사항을 주지시켰다. 통상적 채점의 경우엔 심사위원이 준 점수 중 최상, 최하점만 제외되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평균보다 6점 이상의 편차를 갖는 점수까지 모조리 삭제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평가를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었다.
“떨어질 놈들은 아예 50점 아래를 줘야 되는데, 이번엔 안 되겠구만.” 누군가 짓궂게 농담을 건넸으나 웃지 않았다. ‘그것이 흥행이 됐건 되지 않았건, 예술성이 있건 없건, 모든 영화는 재미있는 영화다’란 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품의 완성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헤아린다면 어떤 연주도 ‘50점짜리’로 쉽게 폄훼할 수 없을 것이다. 50명 내외를 선발하는데 117명이 지원했으니 2대 1이 좀 넘는 경쟁률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10대 1의 콩쿠르 보다 둘 중 하나를 떨어뜨리는 입시 심사가 훨씬 더 까다롭다는 사실이다. 콩쿠르가 갑판 위에서 좋은 객실로 가게 될 사람을 가리는 것이라면, 입시는 갑판 밖 바다로 내던질 사람을 고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한번 바다 밖으로 내던져진 사람들이 다시 갑판 위로 승선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기회비용과 낙담을 떠올리자니 순간 아찔해졌다.
똑같은 곡을 117번 듣다 보면 지구력과 집중력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첫 7명은 아무런 판단 없이 중립적으로 듣는다. 참가자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7명의 연주를 1등부터 7등까지 줄을 세워 정리하고 나면, 이젠 본격적으로 한 명 한 명의 운명을 즉각적으로 판단한다. 청각적 기억력은 시각과 같은 다른 감각에 비해 지속력이 짧은 탓이다.
최상-최하위의 학생을 분별해 내는 것은 쉽다. 문제는 중간에 두터운 층을 형성하며 촘촘히 모여 있는 학생들이다. 천차만별의 연주를 듣다 보면 그릇의 크기와 그릇에 담긴 내용이 분별해 들리곤 한다. 단 네 마디만 들어도 그릇의 크기는 쉽게 가늠되지만, 학생이 그 곡과 함께 흘린 땀과 눈물, 즉 그릇에 담긴 내용을 식별하려면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다. 실력과 상관없는 불운이 가슴 아팠다. 어떤 연주건 타당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