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에 발생한 강진으로 수도 대부분이 완전히 초토화됐다. 수많은 정부 청사와 공공건물, 병원 등이 피해를 입으면서 사회기반시설도 대부분 파괴됐다.’
‘전 세계가 온정의 손길을 뻗쳤으나 서로 다른 구호단체 간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구호활동이 지체됐다. 구호물자의 전달과 배분 역시 공항이 너무 작은 데다 그나마 지진으로 파괴돼 제때 이뤄지지 못했다. 미군이 신속하게 수도로 진입해 질서 유지에 들어갔으나 수많은 생존자들은 1주일 이상을 기다리고 나서야 생필품, 식량, 텐트, 식수 등을 받을 수 있었다.’
‘신속한 구호활동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재민 수가 너무 많은 데다 피해 규모도 워낙 커서 지진 후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시내와 외곽에 텐트를 치고 살았다.’
어떤 국가에서 발생한 지진에 대해 역사가 피터 퍼타도가 그의 저서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마로니에북스)에 남긴 글입니다. 최근 네팔의 7.8 규모 강진에 대한 설명일까요? 아닙니다. 그가 기록한 지진은 5년 전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입니다.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국가들에 재난이 닥쳤다는 점, 천문학적 피해규모와 피해복구 과정에서 불거진 이런저런 시행착오 등 두 국가는 놀랍도록 닮은 꼴입니다. 잔인하리만치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입증되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네팔의 경우 “아이티보다는 상황이 낫다”는 이야기가 현지에서 구호활동을 벌이는 사람들에게서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아이티 지진을 겪고 지금은 네팔에서 근무 중인 한 국제NGO 관계자는 “그래도 네팔 사람들은 천성이 순박해서 그런지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나쁜 생각을 덜 하는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기자가 취재로 네팔에 머무는 동안 만난 네팔 사람들이 실제로 그랬습니다. 가족이 죽고, 삶의 터전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건만 그 속에서도 그들은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슬프지만 슬픈 티를 내지 않으려는 ‘애이불비(哀而不悲)’였을까요, 약간의 웃음과 함께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앞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막막한지 적극 설명하는 그들의 모습은 ‘한의 정서’에 익숙했던 기자에게 꽤 충격적이었고, 꼭 그만큼 비극적이었습니다. ‘이토록 선한 사람들에게 왜 이런 일이…’하는 마음이 내내 따라다녔습니다. 물론 네팔도 지방을 중심으로 시위, 폭동 조짐이 점쳐지고 있지만 괴한들이 총이나 칼 등을 들고 약탈이 발생했던 아이티 때보다는 아직 양호하다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히말라야 설산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네팔 사람들이라고 언제까지나 인내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구호물자가 통관 절차를 넘지 못해 공항에 묶여 주민들 손에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거나, 접근성이 용이한 수도 카트만두나 인근 지역에만 구호손길이 집중되는 등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불만은 폭발하고 말 것입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네팔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네팔은 현재 왕정이 끝난 2008년 이후 정당간 불협화음으로 법치국가의 근간인 헌법도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네팔 국민회의당(NC) 등 여당 세력이 재난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대규모 재난 상황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매뉴얼이 없다는 점도 신속한 재건 사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네팔의 지진이 더욱 잔인한 것은 전체 GDP 절반 이상을 관광산업에 의존하는 국가에서 그 기반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곳 중 4곳이 파괴됐고, 27개 산악지역 중 25곳이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네팔을 찾는 관광객 발길은 줄어들 것이고, 주민들의 한숨은 깊어질 듯합니다. “2022년까지 최빈국을 탈피해 개발도상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네팔의 꿈은 무너졌다”는 말이 엄살이 아닌 이유입니다.
네팔 지진 원인은 인도-유라시아 지각판의 이동이라는 ‘판구조론(plate tectonics)’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때문에 네팔은 역사적으로 수 차례 지진이 있어 왔습니다. 지진 전문가들이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년 전 이미 예고 했지만, 네팔 정부가 이를 가볍게 여겼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티 지진 이후 다수의 과학자들은 “다음 지진이 네팔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봤을 법한 세계 지진대를 펼쳐봅니다. 각 대륙판 경계에 위치한 지진대의 국가들은 잠정적으로 아이티나 네팔과 같은 재난 후보국들. 공교롭게도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저개발, 개발도상국입니다. 자연이 주는 역설이지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해 비용을 들인다는 것이 분명 부담이겠지만, 부디 이번 사태가 제2, 제3의 네팔의 비극을 막는 반면교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얘기하지만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지요.
장재진기자 blan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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