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함유량(마블링)을 최우선 기준으로 쇠고기의 등급을 판정하는 현행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외국의 쇠고기 등급 판정 방식에 관한 관심도 부쩍 커지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건강에 해로운 마블링을 기준으로 쇠고기 등급을 매기는 곳은 한국 밖에 없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는데요, 축산물품질평가원의 도움을 받아 실상은 과연 어떤지 알아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른 축산 선진국들도 한국처럼 마블링을 쇠고기의 주요 등급 판정 기준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육질 판정 항목은 근내지방도(마블링)와 고기 색, 지방 색, 조직감, 성숙도입니다. 마블링 많은 ‘와규’(和牛)로 유명한 일본은 ‘성숙도’가 판정 항목에 없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판정 항목은 한국과 같습니다. 미국은 ‘지방 색’만 판정 항목에 없고 나머지는 한국과 동일합니다. 캐나다는 한국과 판정 항목이 완전히 같고, 호주는 ‘지방 색’과 ‘조직감’항목이 없는 대신 pH(수소이온농도지수) 등 한국에는 없는 항목이 더 있습니다. 따라서 ‘외국에는 마블링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지 않는다’는 평가는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다만 등급 판정 시 마블링을 얼마나 중요하게 보느냐는 국가 별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은 우선 마블링을 기준으로 1++에서 3등급까지 예비적으로 등급을 매긴 뒤 육색이나 지방색, 조직감 등에서 큰 하자가 없으면 예비 등급을 최종 등급으로 그대로 인정합니다. 마블링이 육질 등급 판정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인 거죠.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등급 판정시 마블링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고기 색과 조직감에 대한 평가 비중이 한국보다 높다고 합니다. 마블링이 아무리 많아도 고기 색이나 조직감이 최고급이 아니면 최고 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은 광우병 파동의 영향으로 태어난 지 30~40개월 이상이 된 소의 고기는 마블링이 아무리 많아도 최고 등급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30~40개월령 미만 쇠고기는 마블링이 등급 판정에서 주요 척도라고 합니다.
호주는 특이하게 소의 품종이 무엇인지에 따라, 내수용인지 수출용인지에 따라 등급 판정 기준이 상이하다고 합니다. 우선 내수용은 마블링을 보기는 하지만 그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합니다. 대신 쇠고기 생산부터 유통까지 단계별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사용한다는데요, 거기에 숙성기간과 요리방법까지 등급 판정 요인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가령 숙성 기간이 1주일인 채끝 부위는 ‘스테이크 용으로 최고 등급’으로 판정을 한다는 겁니다. 찜이나 국물 용으로 나오는 고기의 등급 판정에는 마블링의 중요성이 더 떨어지겠지요.
풀을 먹여 사육하는 내수용과 달리 주로 곡물을 먹여 키우는 수출용 쇠고기는 수출 대상국의 요구에 맞춰 등급을 매긴다는데요, 주로 소의 성별과 나이, 마블링 비중 등을 표기한다고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한국이 쇠고기의 마블링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은 맞는 말로 보입니다.
그 밖에 등급 표시 방법도 국가별로 다릅니다. 한국은 1~3등급 이외에도 1+, 1++라는 2개 등급이 더 있는데요, 일본은 한국과 정 반대입니다. 마블링이 가장 많으면 5등급, 가장 적으면 1등급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대신 ‘Prime’이나 ‘Choice’ ‘Select’ ‘Standard’ ‘Commercial’ 등의 이름으로 등급을 표시합니다. 이 때문에 한국도 등급 표시를 할 때 숫자대신, 좀 더 객관적인 표시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등급이 1++등급에서 3등급까지 매겨지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선 1++등급은 ‘고급 고기’, 3등급은 ‘저질 고기’로 오해할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쇠고기의 안전성을 선호하는 소비자일수록 높은 등급의 고기를 사는 경향성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안전성과 등급은 무관한데 말이죠.
일각에서는 높은 등급의 소는 좁은 공간에 가둬 기르며 인위적으로 살을 찌워야 하기 때문에 소의 건강이 나빠 항생제나 호르몬제를 더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높은 등급 쇠고기가 낮은 등급보다 오히려 안전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렇다면 등급 표시는 어떻게 바꾸는 것이 좋을까요. 결론은 소비자와 생산자,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 내놓겠지만, 한 축산학계 연구자의 조언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연구자는 “지금보다 등급 체계를 복잡하게 만들기 보다는, 1등급 이상은 ‘고(高)지방육’, 3등급은 ‘저지방육’ 등으로 객관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것이 소비자의 오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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