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기자

등록 : 2017.03.20 04:40
수정 : 2017.03.20 04:40

우리에게도 '미셸 오바마'가 필요하다

[내일의 퍼스트레이디를 묻다]

등록 : 2017.03.20 04:40
수정 : 2017.03.20 04:40

미셸 오바마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퍼스트레이디의 새로운 롤모델을 보여줬다. 5월9일 치러지는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한국도 미셸과 같은 대통령 배우자를 만날 수 있을까. 2009년 백악관 블루룸에 선 미셸 오바마. 한국일보 자료사진

“탁월한 정치 연설로 국민통합과 소통에 이바지했다. 흑인과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내면서 약자의 이야기에 항상 귀 기울였다.

한국 정치구조상 어렵겠지만 이제 우리에게도 이런 퍼스트레이디가 필요하다.”(60대 여성 김모씨) “미셸 오바마는 가족을 바로 세우는 동시에 대통령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어떤 스캔들도 용납하지 않고 엄격한 자기 관리를 해온 오바마 대통령이 있기까지 가장 큰 공은 미셸에게 돌아가야 한다.”(40대 여성 정모씨)

새 시대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열정적 동반자이자 건강한 부부의 전범이었던 미셸 오바마처럼, 우리에게도 미래지향적인 대통령 배우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는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달 7~14일 20~70대 성인 남녀 5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가 투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답한 응답자는 44.3%, ‘대체로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는 45.4%로 나타났다. ‘대체로 중요하지 않다’는 9.7%,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0.6%에 불과했다. 유권자의 90%에 달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뽑을 때 그 배우자도 중요한 선택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자가 마음에 든다고 특정 후보에게 표를 주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지하는 후보의 배우자가 전혀 마음에 안 들면 지지의사를 철회할 수는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보자와 그 배우자에 대한 호감도가 어긋날 경우 다른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적극적 의사변경 비율이 54.5%에 달했다. ‘그래도 지지하던 후보를 뽑겠다’는 비율(45.5%)보다 9%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대통령 후보 검증에서 이렇게 배우자를 중시할 정도라면 한국 사회도 이제 보다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대통령 배우자를 맞이할 준비가 됐을까.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이 확대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33.1%)고 답한 비율은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11.4%)는 비율보다 3배나 높았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의견은 55.4%가 응답한 ‘소외계층을 돌보고 의전 행사에 참석하는 정도의 현행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였다.

선호하는 대통령 배우자의 상을 묻는 질문에 대해선 ‘정치와 거리를 둔 은둔형’과 ‘전통적 여성상에 충실한 내조형’이 각각 8%와 19.7%로 지지율이 낮았다. ‘전문적 식견을 갖춘 정치적 동지로서 국정에 적극 개입하는 정치가형’과 ‘국정의제를 널리 홍보하고 소통하는 대변인형’도 각각 8%와 8.4%밖에 지지를 받지 못했다. 압도적 지지를 받은 모델은 ‘대통령이 미처 살피지 못하는 사회의 음지와 소외계층을 찾아 돌보는 국모형’(83.4%)이었다. 이어 ‘아동ㆍ여성ㆍ사회복지 등 독자적 사업을 통해 국정에 참여하는 정책가형’이 38.3%의 지지를 받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싫지만 너무 나서는 것도 꺼려하는 이런 복합적인 태도는, 대통령 배우자가 아무런 법적 권한과 역할이 없는 시민이라는 점에서 일부 기인한다. 대통령 배우자는 예산과 활동비, 급여도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제2부속실장을 지낸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대 영부인들이 추진했던 관심 사업은 대통령 특수활동비나 사업 관할부처의 예산,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구매 파트 예산 등에서 그때그때 편성해 수행한다”고 말했다. 권양숙 여사가 추진했던 작은 도서관 사업을 예로 들면, 도서관에 기증할 책이나 모니터 구입 비용을 대통령 특수활동비나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청와대 물품 구매 예산 등에서 탄력적으로 편성해 썼다.

그러나 세계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시민’이라는 똑같은 법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지지율을 좌우하며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한 영부인을 목격했다. 미셸 오바마다. 그는 약자로서 역경을 뛰어넘은 희망과 용기의 산 증인으로서, 서로 공감하고 존중하는 현대적 부부의 모범으로서, 가장 우아하고 설득력 있는 명 연설가로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확장했다.

한국의 역대 영부인들은 다수의 의전활동과 소수의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데에 그쳤지만 이제 ‘한국판 미셸’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그 순간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함께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5월 9일 국민의 선택을 받길 원하는 대통령 후보 배우자 가운데 미셸과 같은 인물은 있을 것인가. 한국일보는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에 관한 논의를 촉발하고, 유력 대선주자들의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문재인 전 대표의 부인 김정숙(63)씨, 안희정 충남지사의 부인 민주원(53)씨,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부인 김미경(54)씨, 이재명 성남시장의 부인 김혜경(50)씨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21일부터 매일 게재된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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