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메르스 확산 못 막아 책임 통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1개월이 지난 23일 신규 확진자가 10일째 한자릿수에 머물고 추가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임신상태에서 메르스에 감염됐던 109번 환자(39)가 세계 처음으로 건강한 남아를 순산한 반가운 소식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이날 3명의 신규 확진자 가운데 173번 환자(여ㆍ70)가 9일 간이나 방역망을 뚫고 서울시내 의료기관 4곳을 돌아다닌 사실이 확인돼 긴장감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가족감염 의심사례까지 발생한 가운데 보건당국이 병원밖에서 발생한 가족간 감염을 처음 인정했다. 메르스 사태 종식이 예상보다 늦춰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은 이날 메르스 사태와 관련,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드렸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직접 나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새로 확진 된 173번 환자는 이달 5일 서울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에서 76번 환자(여ㆍ75, 사망)와 접촉해, 격리대상이었으나 방역망에서 빠져 있었다. 이 환자는 10일 증상 발현 이후 서울 강동구 상일동의 목차수내과, 본이비인후과, 강동신경외과를 거쳐 17일부터 강동성심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정형외과로 진료를 받고, 강동경희대병원 방문이력을 밝히지 않아 22일 1차 메르스 양성 결과가 나오기까지 사실상 메르스 환자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보건당국이 이 환자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8일로, 증상 발현 후 9일이나 통제하지 못한 셈이다. 더욱이 이 환자는 폐렴 증상을 보이고 기도삽관까지 하는 등 그 동안의 ‘슈퍼 전파자’ 사례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당국은 이에 따라 강동성심병원이 3차 대유행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서울시도 이날 별도 브리핑에서 173번 환자와 관련해 7,500명을 모니터링 대상으로 확대해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병원 측은 병동 폐쇄와 함께 외래 진료 중단 조치를 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173번은 장애인ㆍ노인 등을 돌보는 활동보조자로 동행 환자와 병원을 방문했던 것”이라며 “동행한 환자가 ‘(그는) 건강해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 173번 환자의 정보를 주지 않아 관리 대상에서 빠졌다”고 설명했다.
보건당국은 이날 확진된 175번 환자(74ㆍ남)와 관련, 가족 감염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자가격리 방식 변경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 환자는 사망한 118번 환자(여ㆍ67)의 남편으로, 부인이 격리되기 직전까지 함께 생활했다. 그 동안 부부 감염 등 가족 내 감염 의심 사례는 몇 건 있었으나, 보건당국은 병원 내 감염으로만 분류했다. 그러나 정 센터장은 이날 “175번 환자는 지난달 29일 슈퍼 전파자인 14번(35ㆍ남)에게 노출됐지만, 잠복기를 고려할 때 부인한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남편과 아들이 메르스 확진을 받기 전 한 집에서 지내다 전날 확진된 171번 환자 역시 가족감염이 의심됐지만, 보건당국은 병원 내 감염쪽으로 설명했다. 이번 사례 역시 “정확한 감염경로는 정밀한 역학조사와 전문가들의 검토를 거쳐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기존에 감염경로 미확인으로 남겨뒀던 것과는 좀 다른 대응이라 주목된다. 자가격리 방식에도 문제점이 노출된 만큼 후속 조치도 기대된다.
부분폐쇄 상태인 삼성서울병원은 응급실 이송요원 137번 환자(55ㆍ남)의 최대 잠복기가 끝나는 24일 이후 정상 진료를 재개할 예정이었으나 폐쇄 연장 가능성이 커 보인다. 권덕철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삼성서울병원 부분폐쇄 기간 종료시점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이 병원이 안전한가에 대해 판단하고 이에 따라 폐쇄 연장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잠복기가 끝난 메디힐병원, 을지대병원은 집중관리병원에서 해제됐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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