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 강당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2차 주민토론회’. 장애학생 학부모들의 ‘무릎 호소’로 화제가 됐던 그날, 두 발달장애아동의 아버지 최대현(44)씨 역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향해 큰절을 했다.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혐오시설’로만 보지 말아달라며 온몸으로 부탁을 했다.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세웠다면, 부모가 아니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씨는 “정작 큰절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무릎을 꿇은 부모님들”이라고 말했다. 이날 무릎을 꿇은 부모들 중 상당수는 이미 아이가 고등학생이거나 졸업생이었다. 2019년에 특수학교가 개교해도 그들의 아이는 다닐 수 없다. 그럼에도 내 아이가 겪은 고통을 물려주면 안 된다는 것이 ‘선배 부모들’의 생각이었다. 최씨는 “어린 장애아동을 돌보느라 바쁘고 정신 없는 젊은 부모들을 대신해 황무지를 개간하고 나무를 심은 분들” 이라고 강조했다. 오직 장애아동을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통을 덜기 위해 부모들은 더 끈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교육권’ 바깥에 놓인 아이들
김재준(18)군은 새끼손가락에 손톱이 자라지 않는다. 발달장애아인 그가 일반학교인 서울 가양동 공진중학교에 다닐 때 생긴 버릇 때문이다. 국어, 수학은 물론 미술이나 음악수업도 따라가기 힘들었던 그가 수업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자리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거나 낙서하는 것 뿐이었다. 3년을 그렇게 보내니 침독이 올라 손톱이 망가져버렸다.
재준군의 어머니 정난모(46)씨는 3년을 ‘버린 시간’ 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학교의 특수교사들은 장애학생들을 모아 일주일에 3~4번 인근 언덕을 올랐다. 일반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한 장애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비장애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봉책이었다. 하지만 정씨를 비롯한 장애학생 학부모들은 반대하지 못했다. 특수교사조차 부족한 일반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달리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점, 자식을 받아준 것 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정씨가 일부러 아들을 일반 중학교에 보낸 것은 결코 아니다. 입학 가능한 특수학교가 없었을 뿐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부터 특수학교를 알아봤지만 서울시내 모든 학교에 아들의 자리가 없었다.
현재 서울의 특수학교는 30곳. 그 중 발달장애 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는 20곳 뿐이다. 더욱이 각 학교의 초중고 통합 신입생 수는 매년 20여명에 불과해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서울대 가기보다 어렵다’는 푸념이 나온다. 올해 1월 현재 서울시내 장애학생 1만2,804명 중 35%(4,457명), 전국 장애학생 8만9,353명 중 29%(2만 5,789명)만 특수학교에 입학한 ‘행운아’다.
재준군이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서야 서울 강서구 교남학교에 자리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마저도 학급 정원 7명을 훌쩍 넘긴 9명이 있는 반이었다. 워낙 특수교육이 간절한 학생이 많다 보니 학교 측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수용했다.
재준군은 특수학교에 다닌 뒤 많이 달라졌다. 장애를 이해하는 특수교사들이 재준군의 눈높이에 맞춰 수업을 했고 모두가 그의 이름을 알고 따뜻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이제 재준군은 엄마가 “학교가면 안돼” 하며 장난을 치면 큰일이 난 것처럼 놀란다.
이처럼 특수교육의 중요성을 직접 경험한 정씨는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현 상황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3년만 먼저 특수교육을 받았으면 아이에게 얼마나 더 좋은 영향을 주었을까 늘 안타까워요.” 그 마음이 똑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 부모들을 향했다.
점거ㆍ삭발…결국 ‘무릎’으로 알려진 노력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행동대장’들은 대부분 선배 부모들이다. 학교를 원하는 마음이야 미취학ㆍ초등학생 아이를 둔 젊은 부모들이 더 간절하다. 하지만 그들은 한참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장애아동을 두고 집밖을 나서는 것 조차 쉽지 않다. 조부용(57) 씨는 “역설적이게도 학교를 이용하게 될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차다”며 “다행히 저희 아이는 이미 학교를 졸업할 정도로 커서 대신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무릎 호소’를 통해 주목을 받았지만 이전부터 특수학교 건립을 위해 나섰다. 지난해 3월에 서울장애인부모회를 비롯한 100여명의 학부모들이 5일간 서울교육청을 점거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특수학교 건립 공약을 했지만 부지선정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에도 특수학교 건립을 비롯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요구를 하며 부모 6명이 서울시청 앞에서 삭발을 했다. 지난 2월 김성태 당시 바른정당 의원(현 자유한국당)에게 특수학교 설립보장을 요구하며 당사 앞에서 1박 2일 농성을 했다. 여기에 보이지 않는 노력까지 합하면 쉴 틈 없이 달려온 셈이다.
그 동안 무심했던 여론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들은 지금의 상황에 오히려 감사한다. 이은자(46)씨는 “토론회 이후 정말 많은 응원을 받았다”며 “시민들이 분개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정을 공유해준 덕에 건립가능성이 높아진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강서구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단체가 지난달 21일 시작한 ‘특수학교 설립지지 온라인 서명’ 참가자도 토론회 이후 크게 늘었다. 15일 현재 서명자는 1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최씨는 “특수학교가 건립돼도 한 학년 정원이 6명 남짓이어서우리 아이들이 입학을 못할 수도 있는 현실”이라며 “그래도 학교가 일단 건립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씨는 “강서구 문제 해결도 요원하지만 서초구ㆍ중랑구에서도 주민토론회가 무산되고 부지 선정이 되지 않는 등 사실상 끝없는 좌절의 연속”이라고 덧붙였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 모두 ‘학생’이다
부모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통합교육이다. 이씨는 “우리가 죽은 뒤 아이들이 비장애인 친구ㆍ이웃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데 어떤 부모가 분리교육을 원하겠냐”고 되물었다. 장애인이 사회성을 기르고 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경험과 교육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일반교육이 전적으로 비장애학생 중심으로 이뤄지고 자리만 함께 앉는 현실에서 특수학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비장애학생들을 위해서도 통합교육이 필요하다. 더불어 살려면 서로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비장애아동들이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 친구들을 사귀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배우고 이해하면 지금 같은 갈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씨는 “토론회를 연 것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아예 들으려 하지 않아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약 아이가 다닐 학교가 없어서 지으려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반대하면 과연 비장애인부모들도 받아들일까요?” 최씨는 되물었다. 장애학생도 똑같은 학생이고, 특수학교 역시 그저 학교로 봐 주기를 이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