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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소기업 피말리는 약속어음, 단계적으로 없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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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소기업 피말리는 약속어음, 단계적으로 없앤다

입력
2017.05.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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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 결제 평균 108일 걸려

중기 자금난의 큰 원인으로

“즉각 폐지 땐 외상강요 부작용”

전자어음 일원화 뒤 폐지 유력

그 동안 중소기업 ‘자금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혀온 약속어음이 새 정부에서 단계적인 폐지 수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24일 정부에 따르면 중소기업청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집에서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 방안으로 제시한 ‘약속어음 제도의 단계적 폐지’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약속어음이 바로 폐지되면 대기업의 협력사에 대한 외상거래 강요 등 부작용이 불거질 수 있다”며 “먼저 약속어음을 전자어음으로 전면 대체하는 방안부터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전자어음 일원화→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어음결제 폐지→약속어음제도 폐지’의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래의 일정 시점에 일정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는 약속어음은 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납품대금을 지급하거나 중소기업간 대금 결제 시 활용되고 있다. 현금 대체 수단으로 기업 거래에서 신용을 창출하고 경제 활동을 촉진하는 순기능도 있다. 발급 형태에 따라 종이어음과 전자어음으로 구분된다. 전자어음은 종이어음과 달리 관리기관(금융결제원)이 발행인의 자본금이나 신용도를 토대로 어음 발행한도를 제한하고, 법적으로 결제기간(1년ㆍ2021년까지 3개월로 단축)도 규정돼 있어 안정성이 높다.

약속어음이 수술대에 오른 것은 제도상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먼저 구매기업(어음발행기업)이 거래관계상 ‘갑’의 지위를 악용해 어음 결제 시기를 미루면서 납품기업이 자금 운용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7월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어음 결제 기일은 평균 107.9일이나 됐다. 만약 은행에서 어음을 만기 이전에 현금화하려면 할인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연쇄 부도 위험이다. 어음에는 구매기업이 부도난 경우 어음을 할인해 준 은행이 납품 기업에게 상환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상환청구권이 포함돼 있다.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은 “부도가 발생하면 납품 기업은 그 2배(납품대금+생산비용)의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어음제도의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한 대체 결제 수단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 한국은행은 2001년 중소기업 연쇄부도 등 어음 폐해를 막기 위해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이하 외담대) 제도를 도입했다. 외담대는 납품기업이 외상 매출채권을 담보로 거래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납품 대금을 현금화하고,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상환하는 제도다. 그러나 외담대도 상환청구권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2014년 구두 제조업체 이에프씨(에스콰이어)가 법정관리로 외담대를 갚지 못하자 347억원의 대출 상환의무가 납품기업(160개)에 전가되며, 이들이 연쇄도산의 위험에 처한 바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외담대는 사실상 납품기업이 구매기업의 빚 보증을 서주는 제도로 약속어음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새 정부의 ‘단계적’ 약속어음 폐지 방안에 공감하고 있다. 송혁준 덕성여대 회계학과 교수는 “현재 중소기업간 어음 거래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즉각 폐지되면 영세 업체들의 자금경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상환청구권이 없는 ‘매출채권 팩토링 제도’ 등 대체 수단을 확대해 어음거래가 점차 축소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팩토링은 납품기업이 받은 외상 매출채권을 팩토링 회사(은행 등 금융기관)가 매입해 중소기업의 자금 회전을 돕는 제도다. 매출채권 부도에 따른 위험은 팩토링 회사가 부담한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달 7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메타바이오메드를 방문,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는 약속어음 제도를 점차 폐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달 7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메타바이오메드를 방문,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어렵게 하는 약속어음 제도를 점차 폐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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