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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송재정 작가 “만찢남? 아하 뮤비서 영감”

입력
2016.08.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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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2006)에서 송 작가와 작업했던 드라마 제작자는 "송 작가는 선이 굵고 남성적인 스타일"이라고 했다. 작품엔 비극이 넘치지만, 그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들판에 있는 소가 환하게 웃는 사진을 걸어 둘 정도로 낙천적이다. 초록뱀미디어 제공
MBC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2006)에서 송 작가와 작업했던 드라마 제작자는 "송 작가는 선이 굵고 남성적인 스타일"이라고 했다. 작품엔 비극이 넘치지만, 그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들판에 있는 소가 환하게 웃는 사진을 걸어 둘 정도로 낙천적이다. 초록뱀미디어 제공

청춘 스타인 김우빈과 수지가 출연하고,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경희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KBS2 수목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는 위력적인 삼각편대만으로도 성공을 장담했다. 하지만 현실을 달랐다. MBC ‘W’가 ‘함부로 애틋하게’를 제압했다. 지난달 20일 첫 방송된 ‘W’는 지난 4일 14.2%(TNMS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지상파 수목드라마 시청률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만화와 현실을 오가는 판타지적 구성이 드라마에 새로움을 준 덕분이다. 드라마가 워낙 화제가 되다 보니 MBC는 10일 리우 올림픽 중계 대신 ‘W’를 방송에 내보냈다.

‘W’의 송재정 작가(43)가 전화를 받은 건 아홉 번째 통화 시도에서였다. “죄송해요.” 이틀 만에 연결이 닿은 송 작가는 9일 “지금 드라마 집필 중”이라며 처음엔 인터뷰를 고사했으나, 설득 끝에 짬을 냈다. “제가 졌네요.” 13회 대본을 집필 중인 송 작가는 처음으로 드라마 기획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W’처럼 그의 말은 빨랐고, 힘이 넘쳤다.

MBC 수목드라마 'W'의 주인공 강철(이종석)은 사격선수다. 송재정 작가는 "진중하면서도 합법적으로 총을 잘 쏘는 캐릭터를 위해 사격선수를 주인공 직업으로 택했다"고 말했다.
MBC 수목드라마 'W'의 주인공 강철(이종석)은 사격선수다. 송재정 작가는 "진중하면서도 합법적으로 총을 잘 쏘는 캐릭터를 위해 사격선수를 주인공 직업으로 택했다"고 말했다.

“스페인서 고야 그림 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갈등

송 작가는 지난 2015년 스페인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케이블 채널 tvN에서 ‘인현왕후의 남자’(2012)와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나인·2013)으로 연이어 화제 몰이에 성공했으나 ‘삼총사’(2014)로 흥행 부진의 쓴 맛을 보고 휴식 차 떠난 여행이었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찾은 송 작가는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를 직접 보고 충격에 빠졌다. 고야가 말년에 그린 ‘검은 그림’ 연작 중 하나로,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광기 어린 눈이 기괴함을 주는 작품이다. 송 작가는 “창조주가 아들을 잡아 먹는 모티프를 비롯해 고야의 그림이 주는 서늘한 이미지가 좋아서 한 동안 그림에 꽂혀 있었다”며 “그 때 그림을 다음 드라마 주제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 온 송 작가는 순수 회화를 다룰 드라마를 고민하다 만화로 방향을 틀었다. 대중성을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대신 고야의 그림을 보고 착안한 창조주와 피조물의 대결이란 이야기 줄기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나온 게 ‘W’다. 드라마에서 만화가 오성무(김의성)는 자신이 그린 강철(이종석)이 살아나 자신에게 위협이 되자 그를 죽이려 한다. 오성무는 만화 속에서 강철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강철을 범죄자로 만들며, 숱한 사고로 강철을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하지만 강철은 작가에 맞서 ‘자유 의지’를 갖고 결국 살아 남는다. 드라마는 우리는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안에서 키워지고 있는 것 아닌 지,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게 맞는 지 등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W'에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이 현실로 걸어 나오는 모습(위). 주인공인 만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팝 밴드 아하의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아래)를 연상시킨다. 방송·뮤직비디오 캡처
'W'에서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이 현실로 걸어 나오는 모습(위). 주인공인 만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팝 밴드 아하의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아래)를 연상시킨다. 방송·뮤직비디오 캡처

“아하 팬이었어요”…’W’ 속 만화와 현실 교차 배경

‘W’에서 흥미로운 점은 만화란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교차다. 오성무는 강철의 손에 이끌려 만화 속에 들어가 둘의 갈등이 시작된다. 오성무의 딸인 오연주(한효주)도 강철과 만화 속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다. 만화 속 남자 주인공과 그를 보는 현실 여자와의 사랑은 1985년 ‘테이크 온 미’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노르웨이 팝 밴드 아하의 뮤직비디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송 작가는 “중학생 때 아하의 ‘빠순이’었다”고 웃으며 “‘테이크 온 미’ 뮤직비디오가 뇌리에 박혀 ‘W’ 속 만화와 현실의 교차 설정을 만들 때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송 작가는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 관심이 많다. ‘W’에서 가상과 현실의 벽을 무너뜨린 그는 ‘인현왕후의 남자’와 ‘나인’에선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시간 이동의 달인’으로 통했다. 주인공이 향을 태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자신의 삶의 실체에 다가가는 내용을 다룬 ‘나인’은 독특한 소재로 미국에 판권이 팔렸고 방송사 ABC 편성이 유력하다. 송 작가는 “제약 없이 내 뜻대로 원칙을 세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게 재미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송재정 작가가 MBC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의 극본을 쓰기도 했다. MBC 제공
송재정 작가가 MBC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의 극본을 쓰기도 했다. MBC 제공

최초로 스릴러 접목… ’시트콤 이단아’

1996년 SBS ‘폭소하이스쿨’의 예능 작가로 데뷔한 송 작가는 독특한 구성이 돋보인다. ‘순풍산부인과’(1998)를 비롯해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 등 톡톡 튀는 에피소드가 중요한 시트콤 극본을 쓰며 엉뚱한 상상력을 키웠다.

추리와 스릴러도 송 작가의 작품에 빼 놓을 수 없는 요소다. ‘거침없이 하이킥’(2006)이 시작이었다. 그는 유미(박민영)네 집 거실 바닥에 시체를 숨겨두는 아이디어를 내 극을 갑자기 미스터리 스릴러로 이끌었다. 즉흥적 웃음에 집중했던 당시 시트콤의 전개를 고려하면 파격적인 시도다. 이후 송 작가는 ‘크크섬의 비밀’(2008)을 비롯해 ‘나인’과 ‘W’까지 추리와 스릴러적 특성을 곳곳에 버무려 몰입도를 높였다. 송 작가는 “소설 ‘셜록 홈스’를 달달 외우고 다닐 정도로 추리물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이야기가 퀴즈를 풀 듯 박진감이 넘치다 보니 송 작가의 작품은 60대 이상 노년층보다 젊은 층, 그리고 남성 시청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시청률 조사회사인 TNMS에 의뢰해 지상파 3사 드라마 성 ·연령별 시청률을 조사해 보니 ‘W’는 40대 남성 시청률(10.7%·4일 기준)이 30, 40대 여성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같은 시간대 방송된 ‘함부로 애틋하게’(4.47%)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주중 드라마는 보통 40·50·60대 여성의 시청률이 가장 높고 50대 남성이 그 뒤를 잇는다. ‘W’의 10대 남성 시청률(6.99%)은 ‘함부로 애틋하게’(1.91%)보다 약 네 배나 높았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송 작가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며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판타지적 상황을 쉽게 풀고 나가는 게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W'속 현실로 나온 만화 주인공인 강철(이종석, 왼쪽)과 '나인' 속 향을 태워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이진욱, 오른쪽). 초록뱀미디어·tvN 제공
'W'속 현실로 나온 만화 주인공인 강철(이종석, 왼쪽)과 '나인' 속 향을 태워 과거로 돌아간 박선우(이진욱, 오른쪽). 초록뱀미디어·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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