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운동 빼곤 거의 사람들 만나
아이디어도 얻고 재충전 기회
스펙보다 난관 이겨낸 사람 채용
소액 투자자 대상 인터넷 PB 구상
실적 한계… 코스피 최고점 쉽잖을 듯
“돈보다 사람이 자산.”
돈 불리는 일이 존재 이유인 증권사 수장의 메시지치곤 의외였다. 무릇 오랜 기간 한 분야를 파면 다방면에 문리가 트이듯, 유상호(55)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말은 담담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그는 “휴대폰에 등록된 전화번호만 5,000개, 카톡 친구는 4,000명, 사장 재임기간 만난 사람은 수천 명 정도된다”고 했다. 그들 덕에 사업 아이디어를 얻고, 지친 심신을 치유하고, 안주하려는 마음을 다스리고, 세상을 배우거나 달리 보게 된다고 하니 ‘사람이 돈보다 값질 수 있겠다’ 싶다.
그는 최근 8번째 연임에 성공하면서 금융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임기가 1년이니 올해로 9년째다. 앞서 최장 기록을 보유했던 하영구 전 씨티은행장이 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물려받은 타이틀이다.
'런던의 전설'(1992~99년 런던에서 한국주식 영업 최고실적) '최고의 국제통'(99년 귀국 이후) '증권업계 최연소 CEO'(2007년 47세로 한국투자증권 사장 취임)라는 숱한 수식어를 달고 살지만 그는 좀체 평상심을 잃지 않는다. 그 요란하지 않은 성정으로 9년간 급변하는 시장을 마주했고, 시나브로 성과를 쌓아갔다. 15일 CEO가 업이 된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조곤조곤한 말투처럼 답도 진중했다.
-업계 최연소 CEO에 이어 금융권 최장 CEO 기록도 세운 비결은.
“마음을 비우니 결과적으로 오래 채우게 된 것 같다. 사장이 된 이후 임기를 생각해본 적 없다. 주주들의 뜻과 직원들의 신뢰 덕이다. 적임자가 아니라면 당장 떠날 수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취임 후 만 4년째(2011년)부터 순익 부문 업계 1위를 한 뒤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국내 1등이 되자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이제 아시아 리딩IB(투자은행)이라는 목표가 남았다. 운동으로 체중을 10㎏ 뺀 건 개인적 성과다.”
-물러나고 싶은 적은 없었나.
“사장이란 자리가 그만두고 싶다고 떠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더라. 다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에 손실이 나고, 주력상품이던 베트남펀드가 망가졌을 때 힘들었다. 고통을 겪은 투자자들에게 송구하다. 다행히 베트남펀드 1호는 최근 원금을 회복했다. 2호도 곧 회복하리라 믿는다.” (유 사장은 베트남펀드 1호를 환매했고, 2호는 여전히 보유 중이다.)
-같은 일을 10년 가까이 계속하다 보면 안주하고 싶을 텐데.
“급변하는 시장 상황이 가만두지 않는다. 안주한다고 여기면 떠날 때가 된 거지. 아시아 리딩IB를 달성하려면 아직 나태해질 경황이 없다. 매일 사람들을 만나면 오히려 새롭다.”
-얼마나 많이 만나길래.
“새벽에 1시간30분 운동하는 걸 빼면 거의 계속 사람을 만난다. 등록된 전화번호만 5,000개가 넘을 것이다. 업계뿐 아니라 광고, 문화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재충전이 되면서 배우는 게 참 많다. 카톡은 24시간 안에 응답한다. 전국 곳곳의 현장 직원들과 술잔을 나누는 게 큰 행복이다.” (지방에서 경쟁업체의 점포 확대 및 인력 유출 움직임에 맞서 대책회의 대신 ‘술 무한대 제공’이란 타이틀을 달고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려 술판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르겠다. 면접 때 선발 기준은.
“스펙은 안 본다. 난관을 뚫고 나갈 목표의식과 근성이 있는지 살핀다. 부자가 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가진, 스마트하고 헝그리한 사람을 찾는다. 예컨대 고등학교 나와서 바로 직장생활 하다 돈을 모아 뒤늦게 대학을 가서 늦깎이로 지원한 응시자를 뽑았더니 현재 초고속 승진해 회사 내 에이스로 자랐다.”
-다들 짝짓기를 하는데, 은행 없이 혼자 살아나갈 수 있나.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보수적인 은행만의 문화가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증권사에 이식되면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장단이 있다고 본다.”
-요즘 금융개혁이 한창인데 바라는 게 있다면.
“구체적으로 파생상품시장 규제는 풀어줬으면 좋겠다. 노후 보장용 투자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도 늘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뜨고 있는 핀테크(IT기술이 접목된 금융서비스)의 방향은.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기술은 꾸준히 접목돼 왔다. 고액투자자를 프라이빗뱅커(PB)가 관리하듯, 앞으로 소액투자자는 IT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짜주고 자산관리를 해주는 인터넷 PB를 염두에 두고 있다. 30~40분 걸리는 가입 설명시간도 핀테크를 통해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증시가 달아오르고 있다. 사상 최고점(2,228.96) 돌파도 가능할까.
“2,200이 우리 전망이다. 지금 주가는 유동성의 힘으로 오르고 있다. 2,220을 넘었던 당시에 비하면 기업 이익이 그만큼 안 나올 것이다. 실적으로 사상 최고치를 깨긴 부족해 보인다. 유동성의 힘만으론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CEO 자리에서 내려온다면 뭘 하고 싶나.
“아내와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 (지금도 1년에 5, 6번 대학 특강을 하고 있고, 학생들이 꾸준히 연락을 해온단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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