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지금 난민과 전쟁 중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이 2차 대전 이후 최대라고 한다. 지중해를 통해 유입된 난민은 지난 달에 이미 작년 전체 난민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달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 고속도로 갓길에 버려진 냉동트럭에서 시리아 난민으로 추정되는 시신 71구가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드러난 난민의 비참한 실상은 유럽의 다른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인종ㆍ종교ㆍ정치적 이유로 고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이 난민의 고전적 정의지만 지금은 경제적 이유로 조국을 등지는 난민이 더 많아 상황이 심각하고 해결도 그만큼 어렵다.
▦ 유럽 난민의 처리를 규정한 협약이 1990년 제정된 ‘더블린 조약’이다. 난민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한다는 내용이다. 특정국가에 난민이 편중되는 것을 억제하자는 취지지만 그리스나 이탈리아처럼 유럽의 관문에 위치한 나라는 불만일 수 밖에 없다. 최초 도착한 유럽국가로 거주지가 결정되다 보니 최근에는 경제위기를 겪는 남유럽보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으로 가려는 난민의 밀입국과 인신매매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 유럽의 주도권을 놓고 사사건건 부닥치는 독일과 영국이 난민 문제로 또 맞붙었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시리아 난민에 한해 “어느 나라를 거쳐 들어왔건 독일에 들어온 난민은 모두 받아들이겠다”면서 다른 회원국도 전향적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자 캐머런 영국 총리는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며 분산수용을 정면 거부했다. 메르켈의 결단에 대해서도 인권단체는 환호했지만, 다른 회원국들에서는 난민에게 잘못된 기대감을 심어줘 유럽 이민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반발이 적지 않다.
▦ 유럽의 권리장전이라는 유럽인권협약은 전쟁으로 훼손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겠다는 유럽의 다짐이다. 협약의 중요 내용 중 하나가 난민의 망명권 보장이다. 그런 인권을 놓고 유럽이 분열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중세 유럽이 제국주의의 욕망에 사로잡힌 건 식민지의 크기로 국력을 재려는 미망 때문이었다. 유럽 변방의 작은 공국에 불과했던 포르투갈과 그 바통을 받아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 등 작은 나라들이 차례로 대제국으로 군림한 것은 그래서다. 유럽이 겪는 난민 위기는 그런 원죄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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