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주관하는 러시아 좌담회가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민투표를 거쳐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공화국 총리와 합병조약에 서명해 크림반도의 러시아 귀속을 마무리 한 다음날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러시아와 서구의 대결로 치닫던 때였으니 사회자도, 토론자도, 청중도 미국과 러시아가 축이 되는 이 갈등이 어떻게 전개될 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싸움이 길어져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종지부를 찍었던 냉전이 부활이라도 할지 하는 것이 다들 궁금했다.
제럴드 포드와 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군 출신의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냉전으로 회귀는 아니다”고 말했다. 함께 토론자로 참석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도 “신냉전이 아니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냉전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 싸움이 배경인데 이번은 그런 구도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참석자들이 당시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크림을 그냥 러시아에 넘겨주고 말더라도 일정한 선에서 수습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크림이 러시아의 수중에 실제로 떨어지기 전까지 “푸틴이 설마 거기까지야” 하는 정서가 대부분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의 첫 영토 확장인 크림 합병을 목도하면서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사실상 붕괴하고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동서 갈등이 벌어질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던 거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빗나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크림 합병 직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러시아계 다수 지역인 도네츠크, 루간스크주에서는 분리독립 움직임이 본격화했다. 주청사와 주요 도시의 관공서가 친러시아 무장세력에 점거 당했다. 이 지역 상공을 날던 우크라이나 군용기들이 여러 대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추락했다. 지난 7월 중순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는 이 와중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말레이기 격추 이후 국제 여론을 업고 반군 공략을 강화해 일부 지역을 되찾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반군은 오히려 도네츠크주 남부로 세력을 더 확장해 가고 있다. 러시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흑해 연안 도시 노보아조프스크가 이미 반군 수중에 들어갔고, 마리우폴도 위협 받고 있다.
푸틴은 31일 러시아TV ‘제1채널’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 주민의 합법적 이익을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이 지역의 국가 지위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동부를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협상이 시작돼야 한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그 동안 사태 해결 방안의 하나로 동부 연방제를 거론한 적은 있지만 독립국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다. 이 지역이 독립하면 다음 순서는 망설일 것 없이 러시아와 합병이다.
크림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런 사태를 군사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러시아의 교묘한 반군 지원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부크 미사일 등 군수물자 지원에서 이제 노골적으로 병력까지 투입하는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미 수 차례 걸쳐 제재 수위를 높여온 유럽은 다시 추가 제재를 하기로 했다. 현재로는 군사 개입은 물론이고 무기 지원도 꺼리고 있는 미국 역시 더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설 것이 뻔하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단시일에 해결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국내 지지율 80%대를 자랑하는 푸틴은 경제 고립을 감수할 셈이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분쟁이 길어지면 길어지는 만큼, 설사 크림에서처럼 조만간 푸틴의 승리로 끝나면 끝나는 대로 이후 오랫동안 동과 서는 마치 냉전 때처럼 서로를 비난하고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말 러시아 추가 제재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신냉전으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때 오바마는 “신냉전은 아니다”고 답했다. 다음 러시아 제재를 발표할 때 오바마는 같은 답을 할까. 아니 그런 걸 다시 묻는 기자가 있기나 할까. 냉전의 부활이 갈수록 분명해져 가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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