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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김기덕 감독의 망명 아닌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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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의 시네마니아]김기덕 감독의 망명 아닌 망명

입력
2015.10.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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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이 2012년 9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황금사자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기덕 감독이 2012년 9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황금사자상에 입을 맞추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력은 화려하다.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2011년엔 ‘아리랑’으로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 모두에서 수상한 첫 한국 감독이 됐다. 2012년엔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한국영화 최초로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 나가면 쏟아지는 갈채에 응하기 바쁠 정도로 유명 인사다.

정작 한국에서 그는 찬밥 신세다. ‘피에타’가 60만3,283명과 만났으나 김 감독에 대한 환대는 일회성에 그쳤다. 등급 분류 논란을 거친 ‘뫼비우스’(2013)는 3만5,348명, ‘일대일’(2014)은 1만141명만이 보는 데 그쳤다. ‘시간’(2006)과 ‘숨’(2007) ‘비몽’(2008) 등이 관객의 냉대를 받던 2000년대 후반과 차이가 없다.

김 감독의 최신작 ‘스톱’이 국내 극장가에 선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이 오래 전부터 충무로를 떠돌았다. 지난 10일 막을 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스톱’이 국내 첫 상영된 뒤 김 감독은 개봉 의사가 아직 없음을 밝혔다. “제작비에 비해 개봉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며 “(내 영화는) 개봉하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 개봉할 테니) 불법다운로드라도 봐주시기만 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감독 대부분은 예술영화 감독으로 분류되길 꺼린다. 상업성을 표방하지 않아도 자신의 영화가 최대한 많은 관객과 만나길 원하고 대중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길 희망하기 때문이다. 김 감독도 다르지 않다. 신작 개봉을 포기한 김 감독의 비감을 짐작할 만하다.

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고 하나 ‘스톱’의 외피는 완연히 일본영화다. 일본 자본이 투입됐고 일본 배우가 등장한다. 일본 후쿠시마 지역에 살던 젊은 부부가 원전 사고 뒤 도쿄로 이주해 애를 낳아야 할지를 두고 벌이는 갈등을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고발한다. 김 감독의 차기작은 제작비 350억원 가량의 사극 ‘무신’으로 제작 국가는 중국이다. 한국 자본과 영화시장이 김 감독을 외면하면서 김 감독은 망명 아닌 망명을 택하게 됐다.

한국 감독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포착하며 세계의 공명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일까. 김 감독 영화에 대한 대중의 선호도는 각각이겠으나 간판 예술영화 감독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충무로의 미래가 밝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여름 ‘암살’과 ‘베테랑’이 터트린 잭팟의 그림자가 진하게 느껴진다.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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