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사도’를 선보인 뒤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영화라고 하나 빨라도 너무 빠르다. 1년에 1편 꼴로 영화를 내놓은 이준익 감독이라지만 지나치게 부지런하다 싶다. 적당히 뚝딱 만들었을 거란 선입견을 가질 만도 한 이 영화, 그러나 완성도가 높다. 영화 ‘동주’(17일 개봉)는 요절 시인 윤동주와 그의 친구 송몽규의 삶을 흑백화면에 정치하게 풀어낸다. 일부 평론가는 이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너무나 화가 나서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는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의 다르면서도 닮은 삶을 병치시키며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고종사촌 사이로 한 지붕 아래서 친구로 어린 시절을 보낸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라는 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감당한다. 문학적 재능을 둘 다 지녔는데 윤동주는 시의 힘을 강조하고, 송몽규는 문학의 부질없음을 설파한다. 윤동주가 글로써 어두운 시대를 이겨낼 방법을 모색한 반면 송몽규는 행동으로 부당한 현실을 극복하려 한다. 영화는 두 사람의 우정과 대립과 공감을 통해 올곧게 살려다 불의한 시대에 스러져간 뜨거운 청춘을 스크린에 복원한다.
이 감독은 “애당초 윤동주의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2011년 일본 교토를 찾으면서 윤동주가 커다란 물음표로 다가왔다. 윤동주가 다녔던 도시샤대학에서 윤동주 시비(詩碑)와 마주한 뒤였다.
“일본제국주의의 생체실험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일본에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모임까지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없더라. 과연 우리는 윤동주의 삶과 죽음을 제대로 알고 있냐는 의문도 들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포함해 1,800명이 의문 속에 죽었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한다면서도 정작 그의 일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나리오는 신연식 감독이 맡았다. 신 감독은 영화 ‘페어러브’와 ‘배우는 배우다’, ‘러시안 소설’ 등을 연출하며 독립영화계에서 인지도를 높여온 인물이다. 이 감독은 “저예산영화 전문가이면서도 문학적 소양이 빼어나기에 신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제작은 일사천리였다. 지난해 3월 ‘사도’ 촬영과 편집을 다 마친 뒤 “놀면 뭐하냐”는 생각에 한 달 동안 촬영했다. 이 감독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기대할 영화가 아니니 저예산으로 접근했다”며 “덜 유명한 배우를 캐스팅(강하늘을 캐스팅 했을 때는 무명이었다고 했다)하고 화면도 흑백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컬러로 촬영한 사극 ‘왕의 남자’나 ‘사도’는 조선시대를 현재로 옮겨 놓은 듯한 기분이었는데 ‘동주’는 흑백이라 당대로 우리가 간 듯한 느낌이었다”고도 했다.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가 북간도에서 문학청년기를 보낸 뒤 연희전문대에 함께 진학하고 다시 일본 유학 길에 오르는 과정을 되짚는다. 윤동주가 일제 고등형사에게 붙잡혀 독립운동에 대한 취조를 받는 과정과 감옥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는 모습이 종종 끼어든다. 이 감독은 “일본 군국주의의 하수인인 고등형사에게 논리로 맞서는 윤동주의 모습을 통해 군국주의의 모순된 논리와 부도덕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70년 넘게 일제의 피해를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일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한 지적은 못하고 있다”며 “제2차 세계대전 뒤 영국과 프랑스 등이 독일의 책임을 명확히 추궁했던 것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창씨개명을 거부하다가 뒤늦게 현실에 억지로 적응하고 그러면서도 저항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삶은 같은 시기 적극적으로 현실을 따랐던 사람들과 비교된다. 시인 서정주가 조선인 출신 일본군의 죽음을 찬양한 시 ‘마쓰이 오장 송가’를 친일매체 매일신보에 발표했던 1944년 즈음 윤동주는 시 ‘쉽게 씌어진 시’를 썼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시구가 화면 위로 울릴 때 관객은 격한 감정에 휘말리게 된다. 서정주는 1915년생, 윤동주는 1917년생으로 동년배나 다름없었다. 이 감독은 “친일 행적을 지닌 사람들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아 안타깝다”며 “친일파가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일본이 반성하지 않아서다”고 말했다.
식민지 시기에 대한 이 감독의 관심은 2000년 영화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며 싹텄다. “(시나리오를 쓴)박찬욱 감독 등과 100여권의 책을 탐독하며 준비한 영화였다”며 “(상업적) 성과를 못내 상처도 깊었고 당대에 대한 잔상도 많이 남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최동훈 감독이 지난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암살’로 성과를 내줘 고맙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2011년 ‘평양성’의 흥행 실패 뒤 이 감독은 의도치 않게 은퇴 해프닝에 휘말렸다. ‘평양성’이 흥행하지 못하면 독립영화만 연출하겠다는 발언이 엉뚱하게 은퇴 의사로 비쳐졌다. 우여곡절 끝에 ‘동주’를 독립영화 형식으로 만든 이 감독은 “상업성에 대한 압박이 없어 좋았다”며 “저예산영화만 찍을 수 있는 상황이면 얼마나 좋겠냐”고 반문했다. 충무로의 소문난 일벌레인 그는 차기작을 묻자 그답지 않게 말을 아꼈다. “시나리오 두 개를 쓰고 있는데 너무나 어려운 내용이다. 엎을지 몰라서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차기작은 기약이 없다. 나처럼 부지런한 놈이 기약이 없다니 얼마나 불안하겠어?(웃음)”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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