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다시보기]
[편집자주] 방송계를 넘어 일상까지 물들인 먹방·쿡방.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더 화제가 되는걸까요? '대한민국, 식탐에 빠지다'에서는 먹는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이를 보는 시선을 조명합니다.
시청자들이 안방극장을 벗어나고 있다. TV 쿡방 예능의 정보를 더 능동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TV에 소개된 맛집을 직접 평가하거나 스타셰프의 요리에 도전하는 것은 기본이다. 최근엔 자신만의 레시피를 생산하고 SNS를 통해 이 ‘우아한 취미’를 공유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시청자가 소비자에서 공급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요리하는 사람들
직장인 이해리(29)씨는 쿡방 매니아다. 그는 자취방에서 늘 요리채널을 켜 놓는다. TV 쿡방은 혼자 밥을 먹는 날에 특히 유용하다. 실제 저녁메뉴는 라면이지만, TV 속 스타와 함께 파스타를 먹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친구들과 함께 올리브TV '테이스티로드'에 나온 맛집을 찾아다니는 취미도 생겼다.
요리가 취미인 대학생 박소민(21)씨는 더 적극적으로 쿡방 예능을 활용한다. 얼마 전 그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한 곤약 봉골레 파스타와 렛잇컵에 도전했다. 해당 방송에 등장하는 메뉴들은 만들기 쉬우면서도 독특한 음식이 많아 따라 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요리를 하고 있는 도중에는 자신이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뿌듯함도 느껴진다.
SNS를 통한 요리 콘텐츠의 공유도 활발하다. 최근엔 쿡방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방송 콘텐츠를 활용하는 네티즌이 늘고 있다. '아는 남자의 흔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대학생 김정훈(24)씨는 방송에 나온 맛집 후기를 꼼꼼히 포스팅한다. 또 이연복 셰프의 '복꽃엔딩'이나 백종원의 '짜파게티' 등 스타셰프의 레시피도 직접 해보고 후기를 남긴다. 셰프의 레시피를 변형해 자신만의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할 때도 있다. 그는 "나는 요리에 실패한 사진도 올리고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다"며 "요리 할 때의 추억을 생생하게 남기기 위해 블로그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학원강사 김영진(34)씨는 '젓가락 두글자'라는 요리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는 "나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은 면도 있지만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활용한다"며 "앞으로 나만의 레시피 10가지를 개발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베이킹이 취미인 대학생 이수빈(23)씨도 비슷한 이유로 SNS를 활용한다. 이씨는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이유가 꼭 과시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음식을 본 네티즌의 반응이 궁금해서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요리에 빠진 이유
왜 유독 우리나라에서 TV 쿡방 예능이 흥행하고 있을까. 국내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외국인들에게 쿡방 열풍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전주스타일'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미국인 존 맥큐윈(23)은 “한국인들은 꼭 누구와 같이 식사를 해야 하는 문화가 있다. 혼자 밥 먹는 사람은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혼자 밥 먹기 어려운 사람들이 TV 쿡방을 보면서 누군가와 같이 먹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 1년째 거주하는 일본인 코마츠 마도카(21)도 "한국인들은 많은 사람들과 왁자지껄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고기를 혼자 구워먹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고 덧붙였다.
초반엔 단순히 ‘혼밥’(혼자 밥 먹기)의 외로움을 달래는 역할을 했다지만, 지금은 ‘스타 레시피 따라하기’가 현대인의 새로운 취미로 각광받고 있다. 방송 트렌드가 유행을 넘어 실생활에 접목되는 현상은 분명 심상치 않은 변화다. 새로운 대중문화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리브쇼' 신상호 PD는 한국인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을 '문화 발전 단계의 일부'라고 봤다. 신PD는 “1970~80년대는 먹고사는 것 자체가 미션이었고, 2000년대 후부터 외식 문화가 급속도로 발달했다”며 “지금은 2000년대보다 개인의 경제 상황이 더 낫다.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하게 먹고 싶은 욕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웰빙 푸드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는데 외식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현대인이 요리에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부터 먹방·쿡방이 흥행했다. 국내에 2년 6개월을 거주한 일본인 에리나는 “일본에서는 10년 전부터 드라마‘심야식당’ ‘고독한 미식가’와 같은 먹방 콘텐츠가 발달했다. 일본인에게 한국의 쿡방 예능은 진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PD의 분석대로라면 갈수록 소득수준과 삶이 질이 높아진 한국에도 자연스럽게 일본처럼 먹방 문화 현상이 나타난 셈이다.
요리 열풍을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탄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식 콜라보레이션 연구가 안나 셰프는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손님에게 진수성찬으로 접대하고 부를 과시하는 문화가 있었다"며 "최근 확산된 '푸드', '뷰티' 문화는 좀 더 여유로워진 삶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조한울 인턴기자 (한양대 영어영문학과 3)
김연수 인턴기자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
박은진 인턴기자 (경희대 경영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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