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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능력은 제각각… 교과로만 평가 말고 강점 찾아줘야"

입력
2014.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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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부진아를 위한 대책

일률적인 방과후 수업은 자존감만 떨어뜨려 되레 부작용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면 학습부진 원인 진단 훨씬 수월

예산 부족·업무 과다 등 어려움

개별 교사 역량만으론 한계 있는데 하나에서 열까지 떠 맡으라는 식

학교 전체가 시스템을 갖추고 지역사회와 연계 통해 선택·집중을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한 김만호(왼쪽부터·인천 효성초), 임슬기(서울 명지중), 문태주(서울 상현초), 정동욱(서울 유한공고) 교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꼴찌를 위한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교육 현장에서 다양한 학습부진 학생을 지도한 김만호(왼쪽부터·인천 효성초), 임슬기(서울 명지중), 문태주(서울 상현초), 정동욱(서울 유한공고) 교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꼴찌를 위한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꼴찌들에게 학교는 차별과 무관심,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었다. 공부 잘 하는 성적우수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학교는 꼴찌들을 방치했고, 소외시켰다. 현장의 교사들은 꼴찌들에게 학습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는 대신, 배움이 조금 느릴 뿐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로 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달 1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김만호(인천 효성초), 문태주(서울 상현초), 임슬기(서울 명지중), 정동혁(서울 유한공고) 교사가 ‘꼴찌를 위한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교육 경력 9~20년인 이들은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학습부진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수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김만호 교사=수업시간마다 나가야 할 진도가 정해져 있다. 세 자리 수 곱셈을 가르쳐야 하는데 구구단도 모르는 아이가 있으면 교사가 그 아이만 데리고 수업을 할 수는 없다. 수업시간에는 도저히 안 되니까 남겨서라도 가르쳐 보려고 하는데 ‘나머지공부’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낙인감도 크고, 아이들도 남지 않으려고 해 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성과를 보기 힘들다. 기초학습부진의 경우 담임이 지도하는 게 제일 좋지만 바쁜 업무 때문에 꾸준히 지도하기가 어렵다. 교과학습부진은 두 개 반을 만들어 방과후 일주일에 두 시간씩 지도하고 있다. 반복해서 가르쳐주면 약간의 효과는 있는데 확실히 나아졌다고 볼 수도 없다. 반복학습 덕에 비슷한 문제가 나오면 풀지만 다른 유형이 나오면 틀린다. 이런 식으로 구제된 것 같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계속 학습부진으로 남는 거다.

임슬기 교사=현재 수준별수업의 하반에서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정말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머리가 좋고 따라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난 안 돼’라는 좌절감이 커져서 올라온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

문태주 교사=지필평가인 진단평가 대신 진단활동으로 학습부진을 가리고 있다. 짧은 글짓기나 받아쓰기를 시키고, 직접 읽어보라고 한다. 그렇게 해보니 언어 소통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한 학생인데도 시험지를 풀게 했더니 60점을 훌쩍 넘겼다. 지필고사 방식으로 했다면 이 아이는 학습부진이 아니다. 수학도 사칙연산 중 나누기만 못하는 아이가 있다. 시험지만 풀게 해서 미달이 나오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도 모른 채 기초부터 다 시켜야 한다. 진단활동 후에 곱하기 안 되는 애들, 나누기 안 되는 애들 따로 모아서 지도했다. 학습부진으로 ‘못한다’가 아니라 ‘부족한 면을 보충해준다’는 관점에서 진단을 했다. 또 방과후 따로 남겨서 하는 건 지양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진다. 대신 우리학교는 수업 중에 학습지도강사를 투입한다. 담임이 주도적으로 수업을 하고 학습지도강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친구들 옆에 붙어 도와준다. 그럼 수업시간 안에서도 충분히 이해하면서 따라올 수 있다.

김만호=우리 학교에서는 학부모 자원봉사단인 ‘엄마품멘토링’을 운영하고 있다. 읽기, 쓰기가 안 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주 2회 두 시간씩 같이 받아쓰기 연습 하고, 도서관에 데려가 책도 읽어주고, 과제를 돕는다. 고학년이 되면 학습부진 지도를 해도 이미 아이 자존감이 낮아져 있고 학습의욕도 없어 지도가 힘들다. 그래서 저학년에 집중하고 있다. 그 중에는 공부만 가르쳐서 될 게 아니라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어 상담 심리치료를 먼저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정동혁 교사=고등학교는 진로로 풀어가는 게 핵심이다. 미대 갈 아이한테 수학 성적이 떨어진다고 방과후에 남겨서 수학 공부를 시킬 수 없지 않느냐. 영어 교과서 속 문법이나 어휘 실력은 부족하지만 말하기 평가를 했을 때는 예상외로 상당한 수준의 자기소개를 하는 학생이 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영어로 자기소개는 할 수 있어야겠다는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교에선 진로와 연관시킨 전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기초학력이 정말 떨어지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 건 맞다.

김만호=특수반 학생의 경우에는 이 아이가 어떤 부분에 무슨 장애를 갖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도움을 줄지 개별화 교육계획서를 작성한다. 소수 인원으로 학급을 운영하고 보조교사 등 지원이 많다. 이처럼 공교육 현장에서 모든 학생에게 개별화된 교육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교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학생 수가 되어야 하고, 시험 위주의 단편적인 진단이나 평가가 아니라 가정환경부터 심리적인 것까지 진단하고 도울 수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문태주=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들면 효과적이다. 새로 짓는 아파트 근처 학교에 있을 당시 전학생만 받으면서 처음에 9명만 있는 반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9명밖에 안 되니까 아이들 각각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심지어 그 집 숟가락 숫자도 알 것 같더라. 학생들에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다 알 수 있었는데 학생 수가 16명을 넘어가니 그 다음부터는 쉽지 않았다. 학생을 9명만 맡을 수 있다면 어떤 종류의 학습 부진이 있든 다 안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만호=문제는 예산이다. 교사들에게 어려운 업무인 방과후학교도 교사들이 코디네이터를 채용하자고 해도 학교에서는 비용을 아낀다고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학습부진 학생을 위해 이런 얘기하면 분명히 ‘선생님들이 알아서 하면 되지 뭘 그러냐’고 그럴 거다.

-예산 부족, 과다한 업무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학교에 교육 외 돌봄 기능까지 요구하는 상황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교사에게만 떠맡겨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지 않나.

임슬기=방과후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소득, 맞벌이 가정 아이들이라 학습부진이 좀 많다. 제 경험을 얘기하자면 학습공동체가 먼저 형성되고 그 안에서 진로탐색, 자존감 형성, 체육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니 아이들이 흥미를 갖더라. 이 아이들에겐 방과후에 남는 게 더 이상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또 관리자 입장에서는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볼 수도 있다. 보통 학교에서는 학습부진 대책이라고 할 때 딱 주어진 만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동혁=현실적으로 교사가 수업 외에 맡은 업무까지 다 잘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 생각해볼 문제다. 복지는 사회복지사가, 상담은 상담전문교사가 학교에 들어와 있다. 학습부진도 교사가 역량을 집중하도록 해주고, 나머지는 국가가 지원해줘야 한다. 개별교사의 역량이 아닌 학교 전체 교사의 역량이 모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게 최고다. 학습부진은 어느 한 반, 한 교사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임슬기=그런데 학교 실정이나 아이들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학교에 들어와서 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 복지사가 학교에 들어오더라도 기본적으로 더 가까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담임이나 학년 교사와 소통하면서 그 아이에 대한 이해 폭이 넓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교사가 한계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고, 대단히 많은 에너지가 들지만 이 정도까지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문태주=뭐든 담임이 하면 제일 좋겠지만 선택과 집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학교 업무를 하나도 맡지 않고 있는데도 수업 준비하는 데 시간이 모자란다. 다른 데 시간을 빼앗기면 그만큼 손해는 정규수업 받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지금은 충분히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학교가 다 책임진다. ‘돈 줄 테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그러니 교사들이 일을 떠안게 되고 그에 따른 업무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항상 얘기하는 게 지역사회와의 연계다.

-학교가 이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정동혁=학습부진을 문제로 보고 접근하는 관점의 패러다임을 먼저 바꿔야 한다. 학생마다 출발선도 다르지만 학습발달과 성취의 과정이 모두 다르다. 자연스럽게 발달단계가 나중에 올 수도 있는 건데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급식이나 수업료 등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듯 학습에서도 똑같이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면 되는 거다. 교수학습의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학생, 이런 개념으로 접근하면 공부를 못한다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고, 도움이 필요한 학생으로 보고 다가갈 수 있다. 공부를 못해도 건축과 실습 때 도면을 정말 잘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한 번 잘 했다는 성취 경험이 있으면 나중에 취업이나 수능을 준비할 때도 효과가 나타나더라. 영어나 수학을 못했던 것에 대한 자기효능감이 높아지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학습면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지만 자기 스스로 다른 걸 해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성취감을 바탕으로 다른 과목까지 잘 해낼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만호=공감한다. 동료 교사가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데 학습부진인 아이가 발표자료를 잘 만들어 왔다더라. 훌륭하다고 칭찬해줬더니 그 다음부터 그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열심히 해오고 거기서 자존감이 회복되니까 다른 과목 성적까지 향상됐다는 거다. 한 학생의 인생 전체를 보고 강점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 진로지도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 교과에만 집중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수학도 국어도 못하는 아이가 되지만 이 아이가 잘하는 강점을 찾아서 자꾸 도와주고 계발시켜주고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는 교육풍토가 되면 아이들이 거기서부터 ‘나는 괜찮아. 수학 못해도 괜찮아. 나는 그림 잘 그리잖아’ 이렇게 당당하게 학교 다닐 수 있는 분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정동혁=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교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수업을 쫓아오지 못한 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줬는지 돌아보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교직을 떠나기 전까지는 끝까지 가져가야 할 고민인 것 같다.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교사 스스로도 노력해야 한다. 결국 교사가 해야 된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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