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병실에 누워 수십 통의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지금도 수백 통의 편지가 집으로 오지만 그때 그 편지들은 좀 다른 경우다.
‘나의 이력서’를 읽은 독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보낸 편지를 한 장 한 장 인쇄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편지가 있는 줄도 몰랐다.
한국일보 기자가 “한번 읽어보시라”고 전해줘서 읽게 됐다.
그냥 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읽었다. 그러다 세 번째 편지를 읽고는 그만 뒀다. 도저히 계속 읽어내려 갈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왔다.
내 글 하나 하나가 이렇게 그들 마음을 적실 줄은 몰랐다. 이후 지금까지 생각날 때마다 읽어보니 어린 소녀도 있었고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아저씨도 있었다.
미국 LA에서도, 캐나다 밴쿠버에서도 편지를 보내왔다. “이것을 드셔야만 쾌유할 수 있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약재를 보내준 것만큼이나 내게 감동을 줬다.
그 중 한 분은 “이 글을 이주일씨가 읽을지는 모르지만…”이라고 쓰셨다.
이 지면을 통해 밝히고 싶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글 모두 읽었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나의 이력서’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제의보다도, 암에 좋다는 일제 음이온수를 한 박스 들고 온 사람들의 정성보다도 제 심금을 울렸다고.
실례가 안 된다면 몇 통의 편지를 공개하고 싶다. 나 혼자 간직하기에는 그들의 마음씨가 너무나 순수하고 고맙기 때문이다.
‘전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읽은 내용을 학생들에게 간추려 얘기해줍니다. 이 선생님의 삶에는 진실성이 있어서 모든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인 이 선생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빨리 회복하셔서 우리들에게 더 많은 꿈과 희망을 남겨 주십시오.’(정성록씨)
‘유명하신 코미디언이시지만 인생을 코미디처럼 사신 것은 아니었군요. 잔잔한 인생의 고백이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약간은 낯설지만 우리 생의 일부인 암 투병에서도 이제까지의 진솔한 인생을 사신 것처럼 멋지게 극복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박노송씨)
‘선생님의 글을 읽는 시간은 제 일상에서 소중한 시간입니다. 읽고 나서는 깊은 상념에 빠지곤 합니다. 마치 제 앞에 닥친 시련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미리 이 선생님의 글 속에서 앞으로 닥칠지 모를 운명에 대해 준비도 해본답니다. 치열하게 살아온 선생님의 인생에서 어떤 에너지를 느낍니다.’(이진호씨)
‘오랜만에 초등학교 때 친구들 사진을 보니 아저씨 생각이 났습니다. 나이 먹고 나서도 한두 놈은 아저씨 흉내를 열심히 내곤 했었죠. 어릴 적 아버지께서 어렵사리 구해주신 사인은 코팅까지 해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좋은 추억을 만드는 사람의 존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지요. 아무쪼록 빨리 완쾌하셔서 환한 추억들을 우리에게 많이 선사해주세요. 기분 좋게 할 일들이 앞으로도 잔뜩입니다.’(지킴이씨)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아직은 당신을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아니 당신의 고통을 공유할 수 없는 제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집니다. 제가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아저씨가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꼭 일어나십시오.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당신을 향해 기도하겠습니다. 강원도의 힘으로 일어나십시오.’(이건형씨)
‘아니 옛날부터 ‘뭔가를 보여드린다’고 하더니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빨리 후딱 일어나셔서 뭔가를 보여주세요! 정말로 힘내시고 당신의 능력을 한번 보여주세요. 이제야말로 뭔가를 보여줄 기회입니다. 이주일 파이팅.’(김강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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