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민규
기자

등록 : 2017.12.07 23:14

잊을 수 없는 한 해 – 이병환 광진막창유통 대표

등록 : 2017.12.07 23:14

20년 만에 국내산 막창으로는 지역 최대 공장 건축, 할머니가 어깨춤을 덩실 덩실

/그림 1이병환 광진막창유통 대표가 전처리 과정을 거친 막창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여기서 공장하기 힘들 낀데……. 여기 주민들 보통이 아니거든예.” 2000년 8월, 이병환(42) 광진막창유통 대표는 대구 달성공원 인근 주택가에 조그만 막창제조공장을 차렸다.

기물을 정리하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혀를 찼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얼마 안 가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문을 연 지 일주일도 안 돼 이웃에 살던 통장이 찾아왔다.

“주민들이 막창 비린내 난다고 민원이 너어무 심하네. 여긴 공장할 자리가 아니야. 나도 냄새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문을 닫으라는 이야기였다. 자금만 넉넉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공장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40만원. 아는 형님이 소유한 건물이어서 저렴하게 계약을 했다. 그 이상의 건물을 얻기는 무리였다.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묘안을 짜냈다.

통장은 이발사였다. 직원 4명과 함께 통장 이발소의 단골이 되었다. 평소 한달에 한번도 머리를 안 깎았지만, 그 일이 있은 뒤로 2주에 한번씩 이발소를 찾아갔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머리를 깎은 뒤 넌지시 물었다.

“사장님, 냄새 많이 나지예? 제가 최대한 냄새 안 나게 할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한데,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러자 통장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냄새는 무슨, 전혀 안 난다. 괜찮다”

한번은 이웃 동네 통장이 청년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공장 사장이 누고? 이래 냄새나는 공장을 주택가에 떡 차려놓고, 이래가 되겠나. 당장 나가라!”

통장 옆에 섰던 청년들이 눈을 부라리면서 이 대표를 둘러쌓다. 이 대표는 통장 앞에서 이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면서 양해를 구했다. 그들은 당장 공장을 빼지 않으면 기기를 다 부술 듯 엄포를 놓고 사라졌다.

알아보니 그는 얼음공장 사장이었다. 다음 날부터 그 집에서 하루에 4박스씩 각얼음을 구매했다. 공장 내에 있는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으로도 충분했지만, 일부러 그 집 얼음을 사 쓴 것이었다. 얼마 안 가 효과가 나타났다. 얼음을 사러 온 이 대표에게 통장이 말했다.

“요새는 냄새가 전혀 안 나네. 냄새 걱정은 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냄새 난다고 찾아오는 주민들에게 모두 그런 식으로 해결을 했다. 과일가게, 쌀집 사장님도 단골이 되고 난 후에는 냄새가 난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그렇게 5년을 버티다가 외곽지역으로 공장을 옮겼다.

막창 공장의 특성상 냄새는 어쩔 수 없었다. 여과장치를 하고 환풍기를 설치해도 막창의 특성상 냄새를 100% 잡아낼 수는 없다.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도 주민들이 마음을 얻으려고 애썼다. 경로당 회식을 물론 명절 때는 가가호호 방문해 막창을 선물했다. 그 덕에 7년 동안 공장을 운영하면서 한 번의 불평도 듣지 않았다. 이 대표는 그 시절 “정말 악착같이 버텼다”고 고백했다.

할머니 때문이었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난 후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할머니 속만 썩여드렸다. 친구들과 어울려 패싸움을 벌인 적도 많았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경찰서를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 후 처음으로 마음잡고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끝이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할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나 그게 제일 두려웠죠. 우리 손자 철 들었다고 그렇게 좋아하시는데, 거기다 불쑥 ‘할매, 내 오늘 공장 접었습니다’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림 2땡볕이 쏱아지는 여름에 공사를 했지만 내 공장을 짓는다는 마음에 더운줄도 모르고 공사를 했다.

막창 비린내에 시달리다보니 오기가 생겼다. 민원 때문이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비린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머리를 짜내다가 막창 손질부터 유통까지 전과정을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전처리특허’를 받았다. 냄새를 잡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손질하는 방법을 고안하다 얻은 성과였다.

“몇 해 전에 막창 제조 과정이 비위생적이라는 기사 때문에 막창집들이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제가 거래하는 식당들은 거의 손실을 입지 않았습니다. 전열처리 특허 덕분이었죠. 사업주들이 손님들에게 진심을 다해서 우리 막창 깨끗하다고 설명해드렸고, 결국 그게 통한 거죠.”

어느 사이 이 대표는 지역 막창 유통업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사업가로 입지를 굳혔다. 막창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이 대표의 이름에 물음표를 다는 사람이 없다.

올해 경사가 났다. 최신 시설에 ‘전처리특허’ 과정을 100% 적용해서 공장을 건축했다. 전국 최초로 전처리과정을 도입하고 국내산 막창은 전국 최대 규모다. 하루 800kg의 막창을 생산한다. 일반 막창 가게에서 500인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막창 유통에 뛰어든 지 20년 만에 이룬 성과다.

“말 그대로 임전무퇴였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기 때문에 등 뒤는 바로 절벽이었거든요. 죽을힘을 다해서 버텼습니다. 결국 세상이 알아주네요.”

/그림 3대구 서구 상리동에 위치한 광진막창유통. 국내산 막창을 취급하고 제조하는 공장으로 몇 안 되는 곳이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공장 오픈식을 하던 날 손자 앞에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다.

“20년 전 이를 악물고 견디지 않았다면 지금의 광진막창유통은 없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그분들 모두 고맙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원리를 배웠으니까요. 진심으로 다가가면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하면 업주와 손님들이 알아주고, 주변에 조금이라도 베풀려고 노력하면 결국 다 내 편이 된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또 더 베풀며 살겠습니다!”

이 대표는 공장 건립 기념으로 내년 봄에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그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키워주신 은공을 생각하면 세계여행으로도 부족할 것이지만 부쩍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가까운 곳에 다녀올 계획”이라고 밝혔다.

“홀아비 아들에 엄마 없이 자라는 손자를 보며 평생 가슴 아파하며 사셨는데 그 은혜 다 못 갚더라도 늘그막에 제 덕에 웃을 날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장이 잘 되고 우리 공장 덕에 일자리 얻는 사람도 많아져서 할머니가 더 자주 어깨춤을 추도록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세계 일류 청결 식품 광진막창유통을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하하!”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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