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전범의 자백서들을 45일 간 매일 공개하며 군국주의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하고 있는 중국이 본격적인 소송전에 들어갈 태세다. 전쟁 중 일본군에 학살당한 중국인 피해자 유족들이 일본을 상대로 1조원 규모의 집단 손해배상소송을 추진키로 했다.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은 14일 중국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 펑룬(豊潤)현 판자위 촌민위원회와 판자위 민간 대일손해배상소송 추진단이 전날 중국민간대일손해배상소송연합회에 ‘판자위 학살’ 손해배상소송을 위임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중국 민간 대일손해배상소송연합회가 판자위 학살 피해자 유가족을 대신해 중국 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전쟁 중 학살된 중국인 피해자 유가족이 중국 법원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낸 것은 처음이다.
판자위촌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항일요새였다 1941년 1월 일본군에 점령된 뒤 마을 주민 1,298명이 학살된 곳이다. 당시 일본군은 부녀자와 아이, 노약자를 가리지 않았고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한 뒤 끔찍하게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에는 일본 정부의 사죄와 60억 위안(9,850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다. 퉁쩡(童增) 중국 민간 대일손해배상소송연합회장은 “판자위 학살은 일본 침략자들이 중국에서 저지른 전체 죄악으로 따지면 백사장의 모래 알갱이 하나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은 1972년 양국의 국교정상화 당시 공동성명에서 중국 정부의 대일배상 청구권 포기를 명기했다. 그러나 최근 국가간 협상과 상관없이 개인 청구권은 별개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고 중국 정부도 이를 대일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실제로 지난 2월에도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소송을 중국 법원에 제기하자 중국 법원이 이를 접수해 정식 재판이 시작된 상태다. 일본군 위안부 중국인 피해자와 일본군의 난징(南京)대학살 및 충칭(重慶) 폭격 피해 유족들도 관련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상하이(上海) 해사법원은 지난 4월 일제 침략기 중국 기업과 계약을 지키지 않은 일본 기업의 선박을 압류한 적도 있다.
중국의 대일 소송전은 한국의 선례가 참조가 되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2012년 5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소송을 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했고 이어 서울ㆍ부산고법과 광주지법에서 각각 배상 판결이 났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러한 소송과 판결은 일본의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지난 3일부터 일본군 전범 자백서를 공개하고 잇는 중국 중앙당안관(문서기록관)은 13일엔 중국인 831명을 살해했다는 일본군 게이지 사가나카의 자백서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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