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또 졌다. 청각 장애 학생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가 8월 30일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제 42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경주고에 6회까지 11점을 내주고 콜드패했다. 그러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들의 스토리는 이번 대회에도 뜨거운 감동을 낳았다.
● 공식대회 1승 보다 ‘오늘도 무사히’
충주성심학교와 맞붙은 경주고는 지난해 재창단해 14명의 선수만으로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약체 중 약체였기에 '혹시나' 충주성심학교의 첫 승 가능성을 언급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였다.
충주성심학교 박상수 감독은 '공식대회 1승'이 목표라고 밝혔지만, 속에 품은 최우선은 '오늘도 무사히'였다. 야구공이든 배트든 한 번 제대로 맞으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기 특성상 청각 장애를 가진 선수들에게는 그 위험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충주성심학교의 올해 총 출전 선수는 12명, 64개 참가 팀 중 가장 적다. 엄밀히 말하면 이 12명마저도 '선발' 된 선수는 아니다. 고교생 중 여학생을 제외하니 30명 정도였고, 이 중 중복 장애를 가지지 않은 '운동을 할 수 있는 남학생'들만 추려보니 12명이었다.
● '어차피 질 싸움' 알고도 또 부딪힌다
인원 자체가 적으니 '용병술'은 꿈도 못 꿨고,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대회를 치를 수 없을 정도다. 야구는 투수 놀음인데, 투수는 2학년생인 고득원 단 한 명 뿐이다.
경주고 전에서 6이닝 동안 37명의 타자를 홀로 상대한 고득원의 투구수는 120개였다. 이번 대회부터 적용된 투수 1인당 상한 투구수는 130개. 콜드패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다음 이닝에는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투수가 없어 어차피 질 싸움이었다.
사실 매번 그랬다. 더러 이길 뻔 한 경기도 있었지만, 언제나 ‘뒷심’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지고 또 져도 그들은 계속 부딪혔다. 모든 팀에게 참가 기회가 열린 봉황대기는 그들에게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기 때문이다.
2003년 처음으로 봉황대기에 도전장을 내민 충주 성심학교의 출전은 올해로 10번째.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세월에도 그들에게 단 한번의 승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풀이 죽거나 고개를 떨구지 않았다. 이미 세상과 부딪힐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 야구, 세상에 맞서는 힘을 주다
야구부 창단 때만 해도 그들의 목표는 ‘도전 의식 고취’와 ‘추억 만들기’정도였다. 야구부 운영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졸업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효과까지 더해졌다.
대부분 졸업 후 취업의 길을 걷는 충주성심학교 선수들은 직장 내 사회인 야구팀에 들어가 출중한 실력으로 회사 동료와 선배들에게 사랑 받고 있었다. 자연히 회사 적응도 수월했다. 이런 선배들의 모습은 사회 진출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던 충주성심학교 후배들에게 큰 용기가 됐다.
하나 더.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 받는 게 익숙한 삶이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의 몫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야구부 출신 선배들은 취업 후 야구부 후원회를 꾸려 월급 일정액을 떼어 후배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창단 때부터 동고동락했던 박 감독은 “이런 모습을 보면 ‘공식대회 1승’ 목표보다 더 큰 목표를 이룬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의 꿈인‘공식대회 1승’목표가 언제 현실화 될 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야구를 통해 세상과 부딪힐 수 있는 강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세상과 싸움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릎 꿇지 않기에, 어느 누구도 12년 간‘10전 10패’성적을 거둔 충주성심학교 야구부를 ‘패배자’라 부르지 않는다. 김형준기자 mediaboy@hk.co.kr
▶충주성심학교 이야기를 다룬 영화 '글러브'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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