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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모술 탈환작전=쿠르드 독립국가 건설 전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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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모술 탈환작전=쿠르드 독립국가 건설 전초전

입력
2015.03.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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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가 준 절호의 기회

지상군 투입 부담 서방 전폭 지원

이라크 쿠르드족 격퇴전 선봉 나서

마지막 변수는 주변국 동의

강력 반발하던 터키, 영사관 설립 등

대외 관계 개선에 희망도 커져

과격 이슬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를 이라크에서 몰아내기 위한 미군과 이라크군 쿠르드자치정부군의 협공이 본격화한 가운데 쿠르드군의 별칭인 ‘페쉬메르가’(죽기로 각오했다는 의미)의 사기는 드높다. IS가 지배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 모술 탈환 작전에 참가한 페쉬메르가 노병 모하메드 바르자니(60)는 “내 인생의 40년을 전쟁 속에서 보냈는데 처음엔 이란군과 그 다음은 사담 후세인과 싸웠다”고 지난주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이어 “내가 싸우는 목표는 오직 저것을 위해서”라며 참호 밖에 펄럭이고 있는 쿠르드자치정부 깃발을 가리켰다고 이 잡지는 보도했다.

IS의 발호가 이라크 내 쿠르드족의 오랜 염원인 독립을 이룰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이르면 올해 4, 5월 중에 모술 탈환작전을 개시할 계획인데, 페쉬메르가가 그 최전선에 서있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쿠르드자치정부의 독립국가 건설의 꿈은 현실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쿠르드족의 독립이 임박했다”면서 “그 기회는 IS가 만들어준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쿠르드자치정부 IS 격퇴 명분 독립기반 확보 박차

쿠르드자치정부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IS를 격퇴한다는 명목으로 자치권 바깥 지역까지 군 병력을 파견하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지난해 IS가 점령한 이라크 모술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 라비아와 주마 등을 탈환했는데, 페쉬메르가가 주역이었다. 이곳은 IS 근거지인 시리아 라카와 이라크 모술을 연결하는 기점으로 군대 이동과 물자 보급로 등으로 활용되는 군사적 요충지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지난해 이라크 북동부 지역의 키르쿠크, 남동부 지역의 잘라울라 등도 IS로부터 차례로 수복했다.

이들 지역은 이라크 정부군이 IS와 제대로 된 전투도 한번 해보지 않고 겁에 질려 도망친 곳이다. 쿠르드자치정부가 무기력한 이라크정부를 대신해 치안유지와 경계근무 등의 국가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네치르반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총리는 “IS가 지난해 6월 모술을 점령한 이후 모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면서 “이라크라는 국가는 실패했고 또한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만큼 우리는 IS의 모술 점령 전 역내 질서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쿠르드족 독립국가를 세우는 목표로 나아갈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에 밝혔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도 쿠르드자치정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이라크에 직접 지상군을 파견하기에는 부담이 큰 서방 정부가 쿠르드족을 활용해 IS와 대리전을 치르려 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미국은 각각 대전차용 유도 미사일과 다목적 군용차량인 험비 등을 제공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훈련 교관을 파견해 페쉬메르가를 기초부터 재무장시키는 중이다.

쿠르드자치정부는 경제적 기반도 단단히 다지고 있다. IS 발호로 이라크 정부의 장악력이 상실된 기회를 이용해 유전 개발과 원유 직접판매에 나서며 막대한 독립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지난 10년 간 쿠르드자치정부가 지역 내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해외에 직접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었다. 원유 판매대금도 이라크 정부와 나눠가져야 했다. 하지만 최근 IS 세력이 확대되면서 쿠르드자치정부의 군사력이 다급하게 필요해진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자치정부가 원유를 해외에 직접 판매하는 것을 허용했다. 쿠르드자치정부는 올해 일일 원유생산량이 80만 배럴이었던 것을 2017년까지는 100만 배럴까지 증산할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6월에는 원유 100만 배럴을 수출해 1억달러(약 1,018억원)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쿠르드자치정부는 또 최근 키르쿠크 지역을 전격 장악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처(EIA)에 따르면 키르쿠크는 이라크 원유량의 약 10%(약 100억 배럴)가 매장된 핵심 유전지대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원유는 터키의 세이한 지역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을 통해 해외로 판매되는데 쿠르드자치정부는 이곳에 송유관을 추가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니체르반 바르자니 총리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일(현지시간) 바티칸에서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의 니체르반 바르자니 총리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쿠르드족의 독립운동 역사

약 3,000만명에 달하는 쿠르드족은 나라를 갖지 못한 채 이라크와 터키 이란 시리아 등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쿠르드족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자신들 거주지역에서 권력의 공백이 발생하면 분리독립 운동을 벌였다. 소수민족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었던 역내 지배질서가 취약해지는 틈을 독립국가 건설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12세기에 시리아와 이집트 등을 지배하며 번성했던 쿠르드족은 이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다 1922년 6월 처음으로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봉기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동지역 패권을 쥐고 있던 오스만제국이 패배하며 권력공백이 발생한 시기였다. 당시 봉기는 영국이 이라크 바그다드와 모술 등을 위임통치하기 위해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좌절됐다.

쿠르드족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점령한 이란에서 쿠르드인민공화국을 세웠다. 하지만 이 공화국도 소련군이 떠난 후 1년 만에 무너졌다. 쿠르드족은 이후에도 이라크와 이란, 터키 등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분리독립 운동을 벌였으나 정부군의 무력진압으로 번번히 실패했다.

요원해 보이던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이 최근 이라크 쿠르드족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이다. 시리아와 이란, 터키 등에 거주하는 쿠르드족도 이라크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터키 등 주변국도 긍정적 인식

쿠르드자치정부가 계획대로 군사력과 경제력을 확보할 경우 이들의 독립에 남은 마지막 변수는 터키와 시리아, 이란 등 주변국의 동의 여부다. 터키 정부는 과거 쿠르드족의 독립운동에 무력개입까지 벌이며 강력 반발해왔다.

미국의 경우 드러내놓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쿠르드족 독립국가 건설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쿠르드자치정부의 독립으로 이라크 연방이 붕괴할 경우 중동 지역에서 이란의 패권이 커지게 되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쿠르드족 독립을 지지할 경우 터키와의 관계 악화를 감수해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미국의 중앙아시아를 향한 전진지기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다.

터키와 이란 시리아 등 주변국도 쿠르드족의 독립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각 국가별 쿠르드족 분포를 보면 터키 1,500만명, 이란 800만명, 이라크 450만명, 시리아에 150만명이 살고 있다. 만약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독립이 이뤄지면 다른 국가 내의 쿠르드족을 자극해 분리독립 운동을 촉발시키는 ‘자석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주변국의 태도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면서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이 조만간 현실화 할 수 있다는 희망도 커지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바로 터키다. 터키는 지난해 쿠르드자치정부의 에르빌에 영사관을 설립했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대통령과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등 과거 어느 때보다 양국 간 친밀감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 같은 변화는 터키와 쿠르드자치정부 간 올해 상호 교역액이 80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양국 간 경제교역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또 오랜 시간 터키 사회에 동화된 터키 내 쿠르드족들이 분리독립보다는 자치권을 얻길 원하고 있는 점도 터키 정부가 이라크 쿠르드족의 독립을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배경이다.

시리아, 이란 내 쿠르드족들도 독립보다는 각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유럽연합(EU) 형태의 연방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쿠르드자치정부와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지금껏 한번도 독립의 꿈을 포기한 적이 없다. 쿠르드족은 분리독립운동으로 인해 10년마다 수만 명씩 정부군에 학살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독립국가 건설이 먼 꿈이 아닌 가까운 장밋빛 미래로 다가오고 있다. 바르자니 쿠르드자치정부 총리는 “쿠르드족의 독립은 앞으로 5년 안에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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