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과 불에 잘 견딘다는 이유로 한때 단열재나 자동차 부품 등에 널리 쓰였던 석면은 1급 발암물질로 확인되면서 2009년부터 생산과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입수한 ‘석면노출 설문지 개발 및 국내 악성 중피종 환자의 역학적 특성 연구’ 보고서를 보면 석면의 생산과 사용 금지만으로는 피해를 줄일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국민의 생명과 관련한 문제이므로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천안순천향대병원 석면환경보건센터가 실시한 이번 연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피해자 상당수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석면 질환에 걸렸다는 점이다. 대표적 석면 질환인 악성 중피종 환자 411명 중 절반 가까운 186명은 석면과 관련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석면이 사용된 현장에서 일한 가족의 작업복을 세탁하다가 악성 중피종에 걸린 환자만 10명이고 재개발ㆍ재건축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다가 이 질환에 걸린 환자도 12명이나 된다. 한 20대 젊은이는 어린 시절 공사 중이던 자신의 집을 들락거리다 악성 중피종에 걸렸다고 한다. 석면은 굵기가 머리카락의 5,000분의 1에 불과해 호흡기를 타고 인체로 쉽게 유입되기 때문에 간접 접촉 등으로 생각보다 쉽게 악성 중피종에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석면이 유발하는 질환은 잠복기가 매우 길고 따라서 시간이 오래 지나야 증상이 나타나므로 치료 또한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문제는 피해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석면 사용량이 건축자재와 자동차 부품 등 3,000여종에 200만t 가량으로 추정되는 게 우려의 근거다. 따라서 피해의 심각성과 추후 발생 가능성 등을 생각한다면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이제껏 관련 대책을 석면 광산이나 석면 제품 생산 공장에 집중해 왔는데 이번 조사 결과 2차 피해가 적지 않았던 만큼 대책을 생활 영역 전반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환자를 더 열심히 찾아내 적절한 치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환경부가 석면의 매장 위치를 담은 지질도를 완성해 놓고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 불안감 확산을 걱정해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관련 정보를 제공해 주민들이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 마땅하다.
작업 현장에서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얼마 전 제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냉ㆍ난방기 교체작업 도중 천장 구조물 제거 과정에서 석면이 노출되기도 했다. 정부와 자치단체 등은 이런 작은 현장에서도 안전 관리가 철저히 이뤄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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