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ㆍ포스코 등 많은 기업들과 협업
미래지향적 한국사람들과 가까워져
전주 장인의 나무가구에 깊은 인상
10월 DDP 회고전… 모든 작품 망라
디자인이란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늘 궁금증 가지고 공부하는 자세를
전세계에서 1분에 한 개씩 팔려 나가는 와인병 따는 도구가 있다. ‘안나 G’로 불리는 이 와인오프너는 마개를 뽑아내는 몸통 위에 동그란 눈과 웃는 입술의 얼굴이 붙어 있고, 양 옆으로 두 팔을 연상케 하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단순한 도구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 작품으로 바꿔 놓은 주인공은 바로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 거장인 산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멘디니(84)다. 그에 관한 책을 쓴 최경원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정신적인 부분부터 건축, 그래픽디자인까지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슈퍼 디자이너”라며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환생한 듯하다”고 극찬했다.
160㎝가 채 되지 않는 노령의 디자이너는 단 한 번도 밀라노를 떠나서 산 적이 없지만 네덜란드 그로닝거미술관, 일본 히로시마 항구 기념탑, 스위스 아로사 카지노 등 세계 곳곳에 작품을 남겼다. 바로크 풍 의자에 알록달록 점을 찍은 ‘프루스트’와 커피잔이나 가방, 구두 등 일상 속 물건을 거대하게 확대한 ‘남성을 위한 가구’ 시리즈도 유명하다.
올 10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회고전 준비를 위해 방한한 멘디니를 8일 만났다. 공교롭게 회고전 장소인 DDP를 설계한 이라크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멘디니가 도무스 편집장 시절 발굴한 인물이다.
_거의 매년 한국을 찾는다.
“지난 10년간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도 왔다. 삼성전자, 포스코, 롯데카드, 한샘 등 많은 한국 기업들과 협업했기 때문이다. 올 때마다 한국을 더 잘 알게 돼 좋다.”
_서양사람들에게 아시아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을 것 같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느낌인가.
“그렇다. 서양사람이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올 때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넓어진다. 알면 알수록 한국인들은 이탈리아 사람들과 성향이 비슷하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시적이면서 감성적인데 한국 사람들도 그렇다. 또 과거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미래지향적이라는 점도 닮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가깝게 느껴진다.”
_한국 기업들과 협업을 자주하는 이유도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인가.
“고맙게도 업체들이 먼저 찾는다. 한국 기업들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제안한다. 또 필요한 것을 체계적으로 준비해 준다. 그런 작업을 좋아해서 한국 기업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 나도 디자인 관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 한다. 서로 의견이 일치했을 때 작업으로 이어진다.”
_수 많은 기업들과 협업을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은.
“롯데카드, 포스코가 기억에 남는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신용카드를 디자인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신용카드는 항상 갖고 다니는 개인용품인 만큼 시각적으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고 ‘사용하고 싶다’는 욕구도 들게 만들어야 한다. 정작 이런 것들을 반영해 디자인한 카드를 안타깝게도 나는 이탈리아에 살아서 써본 적이 없다.(웃음) 반대로 포스코에서는 공동주택 디자인에 참여했다. 열 개의 건물 외벽에 색채를 입히는 작업이었다. 건물은 신용카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모두 똑같이 생겨서 각각 다른 이미지를 부여하기 힘들었다. 단지 안에 들어서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분명한 정체성을 입히는 게 중요했다.”
_ 가장 인상 깊었던 한국 건축물은 무엇인가.
“누가 디자인 했는지 모르지만 서울의 고층 건물들은 정말 훌륭한 것들이 많다. 저마다 색깔을 갖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그런데 건축물보다 전주를 방문했을 때 그곳 장인들이 나무로 만든 가구들을 본 적이 있는데 한국적 특색이 강해 가장 기억에 남는다.”
_때로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건축물이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이라크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동대문 DDP는 주변과 동떨어졌다는 비판이 있다.
“하디드 건물은 서울뿐 아니라 어디서든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서울처럼 획일적인 도시라면 우주선이 떡 내려 앉은 듯한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런 강한 이미지를 주는 점이 하디드 건축의 특징이다. 그는 어디서든 랜드마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지녔다. DDP는 곡면이 많은 건물 형태 등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는 것이 엿보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_와인오프너 ‘안나G’나 조명 ‘아물레또’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베스트셀러다. 처음부터 상품성을 우위에 두고 디자인을 한 것인가.
“어떤 디자인이 잘 돼서 사람들에게 환호를 받고 많이 팔린다는 것은 작업 당시에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디자인할 때는 기능과 역할만 집중한다. 인기는 네잎크로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 같은 것이다. 두 제품의 공통점은 동양적이거나 서양적이지 않은 보편성이다. 안나G는 와인 따개 기능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라고 보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집 안에 두면 행운을 가져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뜻이다. 아물레또는 동그란 CD 세 개가 이어진 듯 단순한 디자인이지만 우주를 연상시킨다. 사실 디자인을 고안할 때는 원형 세 개를 끄적거렸을 뿐인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웃음)”
_의외로 단순한 디자인이 창작보다는 모방이라는 비판도 있다. 여자친구가 기지개 켜는 모습을 보고 안나G를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지만 아니다. 사실은 발레에서 착안했다. 와인 뚜껑을 따려면 양 팔처럼 올라가 있는 따개 손잡이를 내리고 빙빙 돌려야 한다. 아주 어릴 때 할아버지가 와인을 따는 모습을 보면서 발레리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와인을 따는 행위는 굉장히 전통적인데, 거기에 이미지를 입혀 새롭게 만들었다.”
_한국에서 아물레또는 아이를 둔 어른들이 많이 구입한다. 일명 ‘대치동 스탠드’‘서울대 스탠드’로 불린다. 알고 있나.
“교육열이 높고 학원이 많은 서울 강남의 대치동 부모들이 아이들의 눈 건강을 위해 많이 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다. 하지만 서울대생들도 관심이 많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영광이다.”
_여태껏 만든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제품을 만들고 나면 그것에 대해 완벽히 잊어버리는 것이 소원이다. 그만큼 내가 한 작품 모두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잘 팔리고 유명한 제품을 잘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작품들 역시 굉장히 소중하다. 아이를 낳았는데 다리 하나가 없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다 귀한 자식이다.”
_58세에 처음으로 디자인 회사를 차린 이후 지금까지도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한결같은 느낌을 좋게 보고, 또 누구는 변화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본다면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보나.
“지난 30년 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삶이란 것은 흐름이 계속 연결되는 것이다. 어떤 때는 가라 앉기도 하고, 어떤 때는 봄처럼 햇빛만 비치기도 한다. 더 발전하는 것보다 늘 그 나이에 느끼는 것들을 표현하려고 한다. 지금은 이 나이에서 느끼는 것들을 디자인에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_한국에서는 80세가 넘게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굉장히 드물다. 84세인데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비결이 있다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와 함께 어느 나라를 가고 누구를 만나든 항상 받는 질문이다.(웃음) 필립 존슨, 조폰티 등 우리가 아는 많은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은 70세가 넘어 유명해졌다. 그 시기에 좋은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느 정도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는 뜻이다.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른이라는 데 얽매이지 말고 아이처럼 지내라. 재미와 호기심, 사랑 세 가지를 잃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_어디를 가든 누구나 묻는 질문이라니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자인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늘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기자들이 똑같은 질문을 해서 항상 다른 답변을 하려고 노력한다. 어떤 때는 하루에 몇 번이나 다르게 대답하는데, 그건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웃음) 며칠 전에는 디자인은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오늘은 디자인은 ‘필요 없다’고 말하겠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메여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_일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웃음) 사실 그러려고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산책도 많이 한다. 디자인 스케치와 공부도 꾸준히 한다. 여유가 되면 서울 여행을 올 수도 있겠다.”
_고령이어서 점점 창의력이 떨어지지는 않나. 언제까지 디자이너를 계속 할 생각인가.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다. 항상 궁금증을 가져야 하고, 늘 공부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 지킨다면 죽는 순간까지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_10월 DDP에서 열리는 회고전은 어떤 것인가.
“그동안 만든 거의 모든 작품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리, 모자이크, 금속, 나무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선보이려고 준비 중이다. 특히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작품도 온다. 까르띠에가 보관 중인 금으로 만든 기둥은 운반이 쉽지 않아 전시된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들여오기로 했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 내가 디자인한 의자나 밑그림이 그려진 벽 등을 설치하고 아이들이 직접 색을 입히거나 새롭게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서희기자 shlee@hk.co.kr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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