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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건국대 동물병원 대학원생 수의사 ‘열정페이’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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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건국대 동물병원 대학원생 수의사 ‘열정페이’ 논란

입력
2017.11.02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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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 근무하면서 급여 0원

상담ㆍ처방 등 직접 진료 맡는데

병원 측 “진료 아닌 실습 참여”

실습 참여 신청서 서명 받고

2학기부터 ‘장학금’ 월 60만원

“공부하러 왔으니 열정페이…”

병원 측 녹취록서도 논란 인정

건국대 수의과학대 임상대학원 학생들이 작성해야 하는 실습 참여 신청서. 근무가 아닌 '실습'에 참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은 '실습'에 참여한다는 이유에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건국대 수의과학대 임상대학원 학생들이 작성해야 하는 실습 참여 신청서. 근무가 아닌 '실습'에 참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은 '실습'에 참여한다는 이유에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주 6일을 근무합니다. 말이 오후 6시 퇴근이지 수술이 잡히면 밤 10시까지 일하는 게 기본입니다. 급여는 없습니다.”

6년 과정 수의대 졸업 뒤 국가시험에 붙어 정식 수의사가 된 A씨는 올해 건국대 수의과학대 임상대학원에 입학했다. 학업과 대학부속동물병원 일을 병행하면서 경험을 쌓을 포부로 들떴던 A씨는 입학 후 병원으로부터 ‘대학원 1학기 생들은 돈을 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생 신분이라 근로가 아닌 실습 경험으로 쳐 준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주 48시간을 건국대 부속동물병원에서 일을 하며 진료를 보는데도 A씨 월급은 ‘0원’이다.

대학원생 수의사들이 실습 명목으로 병원에서 주 40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급여를 받지 못해 ‘열정페이’ 논란이 커지고 있다. 1일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에 따르면 건국대 해당 대학원생들은 정식 수의사로서 진료 등 병원 업무를 맡고 있지만 급여가 없다. 2학기 이상 학생들부터 장학금 형태로 월 60만원이 지급될 뿐이다. 이를 급여라 쳐도 시급 3,125원으로, 올해 최저임금(6,470원)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임시 채용(아르바이트)을 제외하고 현재 건국대 부속동물병원에 근무하는 수의사는 총 70명이고, 이중 43명이 대학원생이다.

병원 측은 학생으로서 부속동물병원에서 실습 경험을 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근로라고 볼 수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김휘율 건국대 부속동물병원장은 “진료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대학원생에 한해 실습에 참여하고 있고 진료를 보조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그 근거로 병원은 대학원생들에게 ‘임상실습 참여 신청서’에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신청서에는 ‘재학생으로서 부속동물병원 실습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승인해 주기 바란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최근 병원 근태관리(출결기록 등)를 폐지해 근무시간 역시 따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병원마저 열정페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녹취록 등에 따르면, 병원 고위관계자는 “신청서를 받지 않으면 나중에 노동을 했다고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부하러 왔기에 어느 정도 열정페이 하고 있는 게 아니냐” “근태관리를 하는 순간 노동이 된다” 등 발언을 했다.

대학원생들이 진료를 본 사실도 확인됐다. 병원 진료내역을 확인한 결과, 정식 수의사인 이들은 ‘치료종료 및 상담’ ‘약 처방’ ‘영상진단 소견’ ‘조직검사 이후 재진’ 등 진료 항목에 직접 서명했다. 지난 9월 한 달간 ‘담당자별 매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학기 이상 대학원생 30여명이 올린 매출은 1억1,000여만원으로 총 매출의 50%에 육박했다. 열정페이 논란으로 지난 8월 수의과대학 교수 29명 중 18명이 ‘구시대적인 경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내기까지 했다. 한 교수는 “총장에게도 항의 성명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오히려 성명을 낸 교수들에 대한 감사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실습이라 하더라도 정규 노동을 했다면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며 “실습이나 인턴의 작업이 매출 혹은 이익에 반영됐다면 이는 비용을 줄이려는 꼼수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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