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태성 기자

등록 : 2018.02.09 04:40

[북 리뷰] 일본이여 공기 탓만 말고 책임을 져라!

야마모토 시치헤이 '공기의 연구'

등록 : 2018.02.09 04:40

일본에서 2005년 제작된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 포스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전함 야마토호를 격침시킨 건 미군 전투기가 아니라 일본 해군의 공기였다. '공기의 연구'의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그 공기를 추적해 들어간다. 이런 영화가 나온다는 건, 그 공기가 여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일본에는 공기, 그러니까 전반적인 분위기에 잘 맞추지 못하는 이들에겐 ‘항공기죄(抗空氣罪ㆍ공기에 저항한 죄)’가 적용된다.

항공기죄엔 ‘무라하치부(村八分)’란 처벌이 따른다. 화재대응, 시신처리 외엔 공동체에서 유령인간 취급을 받게 되는, 쉽게 말해 ‘왕따’다. 항공기죄가 그리 무섭다 하니 이런 책도 나와야 한다. ‘공기의 연구’. 전체적 공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리해도 괜찮지 않겠냐는, 일본 사회 특이성에 대한 연구다.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1921~1991)의 생을 보면 대략 그림이 그려진다. 그는 일본에서 드문 기독교 집안 출신의 진보적 작가이자 출판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징집돼서 포병 장교로 필리핀 전장에 투입됐다. 패전 뒤 필리핀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1947년 귀국했다.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일본인이란 참으로 희한한 족속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뒤 일본 혹은 일본인이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저런 책을 썼다. ‘일본인이란 무엇인가’(페이퍼로드)가 한국에 널리 알려진 대표작이라면, 최근엔 참전 경험을 되살려 쓴 ‘어느 일본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글항아리)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77년 작이다. 저자 책 가운데 번역이 다소 늦어진 건, 아마 사변적인 느낌 때문일 게다. 하지만 번역자가 외교관으로 일본에 부임했을 때 일본측 파트너가 “일본에 온 이상 공감하든 비판하든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일본인론에 대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며 먼저 건넨 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일본에 대한 유효한 기록이기도 하다.

'공기의 연구'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경험을 통해 일본의 공기에 대해 되묻게 됐다. 헤이북스 제공

저자의 출발점이 2차 세계대전이니, 책 얘기는 당연히 일본 전함 야마토호에서 시작한다. 우리에게 우주해적 하록 선장으로 익숙한 그 야마토호 말이다. 지금은 핵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경쟁 포인트는 군함이었다. 대형 포대를 갖춘 거함은 1등 선진국 영국에서 꼴찌 선진국 일본까지, 그 시절 힘깨나 쓴다는 제국주의자 모두 애지중지했던, 군사력의 상징이었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때 막상 써보니 잠수함과 전투기의 기동성에 밀려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일본도 그랬다. 야마토호도 몇 차례 출전했으나 전과는 신통찮았다. ‘기름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나중엔 거의 항구에 매여 있었다. 그런데 수세에 몰리던 1945년 전쟁 막바지 오키나와 해전에 투입된다. 예상대로 격침됐다. 승무원 3,000명 가운데 269명만 살아남은 처참한 패배였다.

일본 해군 전략가들이 바보는 아니다. 그들도 패배를 예상했다. 그런데 야마토호를 왜 내보냈을까. 공기의 힘이다. 미국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 작전 실패로 집중 조명받은 ‘집단사고(Group Thinking)’와 다르다. 집단사고는 결과적으로 틀릴 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나 공기는 그게 아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객관적 분석을 해보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묵인, 방조 내지 참여, 지지한다. 집단사고가 ‘잘못된 믿음’이라면, 공기는 ‘잘못됐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끝내 저지르고야 마는 행동’이다. 한발 더 나아가 ‘그 때 공기가 그러했으니 그랬을 뿐인데, 이제 와서 내게 책임을 묻는다면 나로서도 억울하다’라는 의미다.

공기의 연구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ㆍ박용민 옮김

헤이북스 발행ㆍ296쪽ㆍ1만6,800원

저자는 ‘임재감’이니 ‘상황윤리’니 ‘일본적 근본주의’니 하는, 일본인 특유의 호들갑스럽고 배배 꼬인 표현을 쓰지만, 여기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일신교 서구 vs 다신교 일본’이란 대비 아래 서구인은 절대자와 직접 대면하기에 개개인의 책임의식이 명백하지만 일본인은 그때 그때 필요한 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책임을 방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서구의 타자로서 일본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논리 전개를 선보인다. 저자가 괜히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일본인은 원래 그렇다며 비난하면 손쉬운데 우리 공기는 건전한가 되묻게 된다. 국정농단사태에서 최근의 미투(Me too) 행진에 이르기까지, 나름 각 분야에서 잘 나간다는 분들이 해온 행동이나 변명을 보노라면, 일본을 그리 욕하지만 우리도 우리가 욕하는 일본 못지 않게 일본스러운 건 아닌지 모르겠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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