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과 독선 논란에 이어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적 불신이 극에 달하는 동안 청와대는 국민과의 소통 창구인 공식 페이스북페이지(이하 페북)를 통해 대통령 개인을 미화하고 홍보하는데 열중해 왔다. 거의 모든 동영상의 주인공은 박 대통령이고 비슷비슷한 대통령 사진이 타임라인에 넘쳐난다.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친근하고 올바른 대통령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토대로 국민의 지지와 국정운영의 동력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페북에 게시된 동영상과 사진을 보면 과연 이를 통해 국정 철학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고 설득하려 했는지 의문이 든다. 소통은커녕 통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근 3개월 동영상 분석해 보니…
우선 박 대통령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살펴보자. 본보 멀티미디어부가 올해 8월 5일부터 11월 4일(박 대통령 두 번째 사과)까지 3개월간 청와대 페북 타임라인에 게시된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전체 36편의 97%에 해당하는 35편에서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같은 기간 미국 백악관이 48%(117편 중 56편), 프랑스 엘리제 궁이 82%(89편 중 73편)인데 비해 월등히 높은 비율이다.
대통령 동정 동영상은 집권 4년 차인 올해 들어 크게 늘었다. 2013년 취임 후 지난해 말까지 대통령 동영상은 전체 동영상의 41%(94편 중39편)에 불과했다. 대신 노동 및 복지 정책에 대한 홍보나 명절 인사 영상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전체 동영상의 88%(120편 중 105편)가 대통령 동정으로 채워졌다. 박 대통령 개인을 내세운 이미지 홍보가 강화되는 사이 복잡한 정책을 일반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90초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홍보 영상은 청와대 페북에서 사라졌다.
#대통령 동영상 속에 메시지가 있는가
대통령 동영상을 제작해 공유하는 것은 엄연한 정치적 행위다. 대통령은 동영상 속 말 한마디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몸짓 하나로 국정 철학과 가치를 설득해 나간다. 과연 박 대통령의 동영상 속에서 이러한 국정 통치 행위는 성공적이었을까.
청와대 페북에 게시된 대통령 동영상은 행사의 주요장면을 편집한 하이라이트 형식이 대부분이다. 대통령이 일방적 지시사항을 낭독하는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는 말할 것 없이 현장에서 일반 국민을 만나는 장면을 보더라도 메시지 전달을 통한 설득을 꾀하기보다는 밝은 이미지만 앞세운 홍보 행위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현장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민들의 즉흥적인 대화 내용은 웅장하고 경쾌한 배경음악에 묻혀 버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그림 위로 행사 취지를 주입식으로 설명하는 자막만 빼곡하다. 대통령이 본인의 목소리로 명확하게 의견을 말하는 중요한 통치행위의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답답한 나머지 팡파르와 함께 시작해 아나운서의 음성만 들리는 ‘대한뉴스’가 연상될 지경이다.
행사 주요장면 편집…
‘대한뉴스’ 연상
대통령 화면에 등장한 인물 대부분은 밝은 표정으로 인사와 악수를 건넨다. 거의 모든 행사마다 참석자들이 도열한 채 대통령의 말씀을 경청하며 웃거나 박수를 치고 있다. 대통령이 재난지역에서까지 환영을 받는 존재임을 그리도 알리고 싶었던 걸까. 심지어 경주 지진피해 현장 방문 영상에서까지 이러한 전형이 부분적이나마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피해 현장의 모습이나 주민들의 어려움이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는다. 온 국민이 불안에 떠는 상황에서 해결사처럼 등장한 대통령은 분명 희망을 주는 존재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대통령 미화 영상은 재난극복을 위해 국민의 힘을 모으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청와대에 비해 백악관이나 엘리제궁은 대통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뚜렷하게 담아낸다. 배경음악보다는 일반인과 스스럼 없이 나누는 대화나 아예 대통령 인터뷰를 중심으로 영상이 구성된다. 지난 8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루이지에나주 홍수 피해지역을 방문한 동영상을 예로 들면, 대통령이 실의에 빠진 주민들을 안아주고 위로하는 동안 국민적 관심과 협조를 구하는 대통령의 차분한 음성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소통과 설득이란 이런 것 아닐까.
#무차별한 사진 업로드
소통이나 설득이 없는 일방적인 홍보 방식은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3개월간 백악관 페북이 게시한 대통령 사진이 72장, 엘리제 궁이 118장 정도인 데 비해 청와대는 무려 580장에 달한다. 하루 평균 6.4장, 많게는 한번에 18장씩 업로드 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위치나 몸짓, 표정이 비슷비슷하다 보니 눈길을 끌지 못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 많은 사진마다 어떤 가치와 메시지를 담으려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더군다나 소통수단으로서 동영상이나 라이브방송이 각광을 받는 요즘 정지된 이미지를 다량으로 업로드 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백악관과 엘리제 궁은 사진보다 동영상의 비중이 높다. 화면과 음성이 실시간으로 가감 없이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페북 라이브도 같은 기간 엘리제 궁은 4차례, 백악관은 38차례나 진행했으나 청와대는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공적 시스템 개인 변호에 이용 논란
청와대 페북의 게시물 수는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5일부터 10일까지 5건의 게시물과 사진 16장을 올린 후 긴 침묵을 지켜왔다. 대통령이 일정을 최소화 한데다 악화된 국민 여론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국에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19일 오후 7시경 청와대 페북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신설된 ‘오보ㆍ괴담 바로잡기’코너를 공유했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20일엔 검찰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대통령 변호인의 입장을 공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적인 체계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私用)하고 있다는 비판이 인다. 대통령이 사비로 고용한 개인 변호인의 반론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공유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반면에 국정 책임자와 관련된 일이고 통치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므로 타당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권수진 인턴기자(한양대 철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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