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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 후퇴할 명분도 이유도 없어" 밀실공천 폐지 명분서 승산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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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 후퇴할 명분도 이유도 없어" 밀실공천 폐지 명분서 승산 판단

입력
2015.10.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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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번호 공천 관철 의지 다져

"후퇴할 명분도 이유도 없어"

의총 모두발언부터 정면으로 맞서

靑에 사과 소문에 "내가 왜…" 역정

"진정한 의미 金의 정치 시작" 評도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30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천제도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30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천제도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 불참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치 생명을 건 ‘전쟁’을 시작했다. 대통령 부재 중에 야당 대표와 잠정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오픈프라이머리 변형안) 관철을 위해서다. 보궐선거로 여의도에 재입성한 김 대표가 ‘정치 생명’을 운운하며 관철 의지를 표명한 건 공천제도 혁신이 유일하다. 길게는 총선을 넘어 대선까지 가름할 ‘김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평이 나온다.

“이번 만큼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무대

30일 의원총회를 마친 뒤 김 대표의 발언은 예상보다 강도가 셌다. “(차기 총선에서) 전략공천은 단 한석도 없을 것”이라던 이전의 태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전략공천은 내가 있는 한 없다”고 했다. “어떻게 청와대 관계자라는 이름으로 집권여당 대표를 비판하느냐”며 “모욕은 오늘까지만 참겠다”는 강수도 뒀다.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린 박근혜 대통령의 강도 높은 반대와 사전 결의까지 다진 친박계의 반발에 되레 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의총 도중 회의장 밖을 나왔다가 자신이 청와대에 사과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는 얘기를 기자들에게 전해 듣고는 “어떤 X이 그런 말을 해. 내가 왜 사과를 해”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는 모두 발언에서부터 강경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인신공격은 하지 말자”며 각을 세운 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안심번호 국민공천에 이르게 된 경위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특히 야당의 덫에 걸렸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안심번호는 우리 당의 권은희 의원이 20년 전 KT에 근무할 때 만든 방식이며 정개특위 소위에서 안심번호가 통과됐다”고 친박의 공격에 정면으로 맞섰다.

김 대표의 측근들은 이번만큼은 김 대표가 “후퇴는 없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이번 사안은 정치 개혁을 위한 신념의 문제인데다 지지하는 국민 여론이 70% 이상”이라며 “양보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앞서 ‘공무원연금 정국’, ‘유승민 거취 정국’ 등 잇단 고비마다 결국 청와대의 편에 서 비판을 받아 왔던 과거의 김 대표가 아니라는 의미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중국 방문기간 ‘개헌 봇물’ 발언을 했다가 ‘개헌 불가’를 강조한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것이냐는 해석이 나오자 하루 만에 “죄송하다”며 꼬리를 내린 적도 있다.

김 대표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김 대표는 ‘줄세우기 정치’, ‘낙하산 정치’, ‘계보정치’의 폐해를 양산한 전략공천 폐지라는 명분에서 물러서지 않고 친박계와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김 대표의 측근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해 반발하는 배경도 ‘명분 싸움에서 승산이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김성태 의원은 이날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과거에 정치권력자나 세력이 밀실에서 하는 전략공천을 또 하자는 것이냐”고 쏘아붙였다.

정치 생명 건 ‘김의 전쟁’ 시작됐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김의 전쟁’ 서막이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대표는 5선의 중진이지만, 항상 그의 앞에는 거물 정치인의 이름이 따라다녔다. 정치 입문기에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 3선이던 17대 국회에는 ‘박근혜의 남자’로 불렸다. 18대 국회에선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 대학살의 피해자가 돼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했고, 19대 공천 역시 계파 간 이해관계에 밀려 낙천했다. 그러던 그가 2013년 4월 재보선에서 영도에 출마해 당선됐고,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자력으로 승리해 대표최고위원 자리에 올랐다. 이런 그를 두고 측근들은 “작년에야 ‘자기 정치’를 시작한 것”이라고 말한다.

의총 뒤 일부 의원들은 김 대표가 달리 보였다는 평을 내놨다. 비박계의 한 재선 의원은 “김 대표에게 국민공천제는 자신이 지켜야 할 정치적 ‘마지노선’이자 대선주자로서 이제야 진정한 의미의 ‘자기 정치’를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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