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답변공개-수사기록 요청 등
변호인단 건건 문제 삼아 지연전
헌재 열흘째 수사기록 확보 못해
일각선 “법 유연하게 해석 가능”
“재복사 불가 조건에 사본 받아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접수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최순실(60)씨 재판이 시작된 19일까지도 수사기록을 확보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측은 모든 절차를 문제삼으며 재판 지연전략을 펴고 있는데도 헌재가 대책 없이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헌재는 19일 전체 재판관회의를 열고 검찰이나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사기록을 늦게 제출할 경우 자료확보 방안을 논의했다. 헌재는 수사기록 요청에 제동을 건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의 이의신청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지 않았다. 배보윤 헌재 공보관은 “구체적 형식이나 방식, 결정시기에 대해서 논의했다”고만 답했다.
박 대통령 측이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 헌재가 서둘러 결정을 내리지 않은 데 대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재판이나 수사가 진행 중인 경우 자료제출 요구를 제한한 헌재법 제32조에 따라 헌재가 이날 오후 최씨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수사기록을 제출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헌재가 이 조항을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헌재법 제32조는 수사나 재판에 지장을 주지 말라는 취지이지 물리적 시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전직 헌법연구관은 “재판이 시작된 후에도 법원이나 검찰, 특검이 공개할 수 있다고 판단한 내용은 충분히 제출할 수 있고, 수사에 필요한 원본이 아닌 사본 제출은 문제 없다”고 해석했다. 특검이 ‘수사과정에서 공범자들의 진술내용이 공개되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전부 열람ㆍ복사할 수는 없도록 해달라’는 단서를 달아 헌재에 제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박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하루 전 국회 소추위원단이 대통령 측 답변서를 공개한 점도 문제 삼았다. “재판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으니 헌재가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제지해달라”며 헌재에 소송지휘요청서를 제출했다. 재판 시작 전에는 공익상의 이유가 아니면 소송서류를 공개하지 못한다고 정한 형사소송법 제47조를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헌재에 재직한 노희범 전 연구관은 “이 사건은 공익적 성격이 큰데다, 헌재가 형사소송절차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재판부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헌재법 제40조는 ‘헌법재판의 성질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형사소송 절차를 준용한다고 규정돼 있어서, 형사소송 절차와 다소 달라도 크게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인데다 선례가 없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헌재 내부사정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헌재가 이번 사건을 서둘러 진행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절차적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헌법실무가도 “헌재가 100년에 한 번 열릴까 말까 한 중대한 탄핵심판에 하자가 없도록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절차에 흠이 없도록 하고, 여론에 밀려서 졸속으로 재판하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했다.
헌재는 이르면 이번 주 중에 준비절차 기일을 잡을 계획이다. 국회 소추위원 측은 이달 21일 이후를 희망한다고 헌재에 답변했으며, 박 대통령 측은 특별한 의견이 없다고 회신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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