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미시마 유키오 한 대목 그대로 베껴"
소설가 이응준씨 주장 파문
신경숙 소설가의 단편 한 대목이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씨는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에서 신씨의 소설집 ‘오래 전 집을 떠날 때’(1996년 창작과비평사 발행, 이후 ‘감자 먹는 사람들’로 재출간)에 실린 단편 ‘전설’의 한 대목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1983년 주우세계문학전집 20권으로 발행?김후란 번역) 중 단편 ‘우국’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표절 시비가 제기된 대목은 아래와 같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이씨는 이를 두고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이라고 지적했다. 또 두 글에 공통으로 등장한 ‘기쁨을 아는 몸’이라는 표현에 주목, 이는 ‘우국’을 번역한 김후란 시인의 독자적 문장이며 이처럼 시적인 표현은 “누군가가 어디에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가 없는 차원의,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도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우국의 다른 번역본에서는 ‘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고 표현돼 있다고 덧붙였다.
공개적으로 표절 의혹을 제기하며 “문단생활을 포기한다”는 각오까지 밝힌 이씨는 한 명의 작가를넘어 인기 작가의 표절 문제를 오래도록 외면해 온 문단의 문제를 작정하고 짚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우국’ 표절 의혹은) 10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며 나뿐만 아니라 문단의 상당수가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과거에도 얘기가 나온 적은 있다”며 “중앙대 교수인 이승하 시인이 학생으로부터 제보를 받아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논점을 회피해 마무리지었다”고 말했다. 이승하 시인은 2000년대 초반 쓴 ‘표절하는 자들의 나라에서 사는 부끄러움’이라는 글에서 신씨와 미시마의 글을 놓고 “표절을 운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영향을 받은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이씨는 “문제는 한국 문인 중 이 일에 대해 누구도 자기의 이름을 걸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표절을 밝히는 것이) 나나 신경숙씨 모두에게 좋을 것이 없지만 침묵할 경우 한국문단에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공고해지고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표절 사실이) 인터넷에 출처 없는 글로 떠돌아다니기보다는 정식 기록으로 남아 나중에 도서관에서 찾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며 “이를 위해 8년 전부터 문단에 발을 끊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신씨가 단순히 베스트셀러 작가가 아니라 동인문학상 종신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등 한국문단 최고의 권력이라는 점, 그리고 다양한 언어로 번역돼 외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가라는 점에서 이를 바로잡지 않고 감추는 것이 한국문학의 더 큰 치욕이라고 지적했다. 이씨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변호사 선임까지 마쳤다고 밝혔다.
신씨는 2000년을 전후해 표절 시비에 휘말린 적이 있다. 1999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신씨의 소설 ‘딸기밭’의 한 구절이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에 실린 아버지의 편지글과 같다는 사실이 보도돼 논란이 됐다. 또 문학평론가 박철화씨는 ‘작가세계’ 1999년 가을호에 신씨의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와 단편 ‘작별인사’가 각각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를 표절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시 신씨는 “유족에 누를 끼칠까봐 유고집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고 표절에 대해서는 모두 강하게 부인했다.
신씨의 비중이 훨씬 커진 지금 다시 불거진 표절 의혹에 대해 문단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지만 일부는 이씨의 문제제기에 동의했다. 익명을 요구한 작가 A씨는 “신경숙이 숱하게 표절해왔다는 것은 90년대 동료 작가들은 모두 다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베꼈는지도 알고 있다”며 “등단 이전 방송작가로 일하며 좋은 글귀를 메모해두고 원고에 끼워넣는 게 몸에 밴 것 같다”고 말했다.
신씨의 출세작 ‘풍금이 있던 자리’ 제목도 표절 의혹을 샀다. 작가 B씨는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절묘한 상징이라는 상찬을 받은 이 제목은 엄승화 시인의 시집 ‘온다는 사람’(청하 발행)에 수록된 ‘풍금을 놓아 두었던 그 자리’에서 가져왔다. 신씨는 그 시집에서 ‘해변의 의자’도 제목으로 가져다 썼다”며 “지금은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엄승화 시인이 당시 굉장히 황당해했다고 많은 시인들이 수군거렸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은 것은 과거 표절시비가 일었을 때 문단의 권력자들이 쉬쉬하며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들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작가들은 말하고 있다. A씨는 “동업자로서 지적하기도 어렵지만 문학권력층이 그렇게 반응하니 누가 문제를 제기하겠느냐”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신경숙 작가는 전화를 받지 않고 있으며 김후란 시인은 일체의 의견 표명을 거부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