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구조화 증권 발행 규모
올해 1조140억弗까지 늘어날 듯
자동차할부채권ㆍ카드채권 등
투자 대상도 갈수록 다양해져
금융기관 간 전염 위험성 증가
저금리ㆍ양적완화에 맞춘 상품들
긴축으로 들어가면 엄청난 충격
지난달 31일 초단기 공사채형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시장에서 8조6,566억원이 순식간에 빠져 나갔다. 열흘 전만 해도 127조원이었던 국내 MMF 시장 규모는 8일째 계속된 자금 유출에 108조원까지 줄어들었다. 갑작스러운 ‘펀드 런’을 촉발시킨 것은 카타르 은행의 정기예금을 기반으로 한 구조화 금융 상품인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부실 우려였다. 구조화란 주식 채권 환율 등 기초자산에 옵션 선물 스와프 등 파생 상품을 결합한 상품이다.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자산을 유동화한 경우도 포함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씨가 된 구조화 금융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투자 대상 자산은 다양해지고 구조는 더 복잡해지고 있는 가운데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투자자의 위험을 분산하고 수익률을 높이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의 책임은 점점 모호해지고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은 오히려 커졌다.
◇10년 전 트라우마, 구조화 증권의 귀환
구조화 금융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금융위기 이전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IB)들은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한꺼번에 모은 뒤 채권 형태로 판매한 모기지담보부증권(MBS)으로 큰 이익을 남겼다. 시장에서는 이를 다시 구조화 한 부채담보부증권(CDO)이 판매됐고 이 상품의 부도 위험만 따로 떼서 거래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까지 등장했다. 여러 차례 ‘구조화’란 이름으로 세탁을 거치며 최종 투자자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자산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겹겹이 포장된 부실 채권의 책임 소재마저 모호해지면서 금융 시장 참가자들은 ‘폭탄 돌리기’를 지속했다.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한 때 자취를 감춘 구조화 상품은 곧 바로 기지개를 켰다. 신용평가기관인 S&P에 따르면 전 세계 구조화 증권 발행 규모는 2015년 7,010억 달러(약 787조원)에서 지난해 9,300억달러(1,014조원)까지 늘었다. S&P는 올해는 1조140억달러(1,139조원)까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담보대출뿐 아니라 자동차할부채권, 카드 채권에 대출채권을 담보로 한 채권(CLO)까지 투자 대상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저금리를 유지하며 시장에 돈을 쏟아내던 ‘양적 완화’ 시기가 끝나고 통화정책의 정상화, 나아가 긴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신용을 기반으로 한 구조화 상품 증가는 시장의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저금리 환경이 깨진 2016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과 CLO등 신용파생상품 발행이 크게 늘고 있다”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확산 전 CDO나 CLO같은 상품 발행이 급증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차분한 시장에 맞춰진 구조화 금융, 부메랑 될까
금융 불안이 다시 찾아온다면 10년 전보다 더 큰 후폭풍이 전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구조화 금융을 접목한 파생형 상장지수펀드(ETF)와 이미 설계된 지침대로 컴퓨터가 자동으로 투자하는 알고리즘 투자가 만나 자본시장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을 여러 개 조합해 만든 ETF는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 한 예상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반대로 시장이 예상을 벗어날 경우에는 큰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오랜 기간 이어진 ‘차분한 시장’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얻도록 설계된 ‘레버리지 ETF’나 ‘저변동성 ETF’가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토비어스 아드리안 국제통화기금(IMF) 통화ㆍ자본시장부문 이사는 “변동성이 커지면 구조화 상품의 연쇄적인 자산 매도가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지난 2월5일(현지시간) 뉴욕 주식시장에선 한차례 소란이 벌어졌다. 변동성지수(VIX)가 30포인트를 기록하자마자 여기에 연동된 ETF가 한꺼번에 주식을 팔며 불과 10분만에 다우지수가 3.5% 이상 급락한 것.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감정을 배제한 프로그램 매도가 낙폭을 더 키웠다”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금융사들은 구조화 금융에 열광하고 있다. 다양한 시장 상황에 맞춰 위험을 줄일 수 있는 구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위험 자체를 사고 팔며 부수적 수익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곳이 무너지면 도미노처럼 위험이 전염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 오랜 기간 지속된 저금리와 완화 정책에만 맞춰진 상품 구조가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은 금융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함정이다. 금융 파생상품 분야 전문가이자 ‘익스트림 머니’의 저자인 사티야짓 다스는 “감독 당국이 해야 할 일은 신용과 레버리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 너무 커버린 금융 시스템에 자리잡은 불필요한 복잡성 등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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