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시장 브리핑 후 성남ㆍ수원ㆍ부천 등 野 수도권 시장들 가세도 부담
메르스 확진 권한 지자체에 이양, 중앙 - 지자체 실무협의체 구성키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과 관련 줄곧 ‘비공개’로 일관해오던 정부가 확진 환자가 거쳐간 병원 24곳을 공개한 데 이어 메르스 확진 권한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시작으로 “정부가 하지 않으면 나라도 하겠다”는 수도권 자치단체장들의 잇단 차별화 행보가 정부의 메르스 대응방침 선회에 불을 당겼다는 분석이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하거나 경유한 병원 24곳의 정보를 공개했다. 지난달 20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발생한 후 18일 만이다. 정부는 그 동안 메르스 확진 환자 및 병원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이유로 고사해왔다. 그러던 정부가 직접 나서 병원 정보까지 공개한 것은 뒷북 대응이란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등 악화된 민심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최 총리대행은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지금 현재 메르스로 인한 국민 불안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에 부작용보다는 국민 불안 해소와 메르스 사태 조기 종식이 더 급한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비공개 원칙이 깨진 데에는 지난 4일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환자’의 동선과 접촉자수를 공개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밤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박 시장의 브리핑 이후 국민들의 지지여론이 확산되자 정부가 부담을 느끼게 됐다는 분석이다.
박 시장의 행보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5일 오전 곧바로 “불안과 우려를 키웠다”고 유감을 나타냈고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지자체의 자체대응이 도움이 안 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박 시장은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면서 더 나아가 관련 정보 공유와 확진 권한의 지자체 이양을 요구했다. 또 삼성서울병원에는 확진환자의 동선과 접촉자 등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경우 병원 폐쇄도 불사하겠다며 초강수를 뒀다. 박 시장에 이어 이재명 성남시장과 염태영 수원시장, 김만수 부천시장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단체장들이 잇따라 확진 환자 관련 정보를 공개했다.
이 같은 수도권 단체장들의 행보에 일부에서는 ‘월권이다’ ‘정부의 대응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국민들의 지지도 적지 않다. 35번 환자가 근무한 삼성서울병원에서 확진 환자가 추가로 늘어나면서 정부도 결국 24개 병원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등 대응 방식을 180도 전환했다.
정부는 향후 메르스 확산 방지를 위해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중앙-지자체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서울시가 이미 대응 방침으로 정한 격리자 전원을 보건소와 지자체 공무원과 일대일로 매칭해 관리하는 방안도 벤치마킹해 추가 계획으로 발표했다. 메르스 확진 판단 권한도 지자체에 이양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시장은 그 동안 메르스 대응과 관련해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중앙정부는 머리 역할을 하고 지자체는 손발이 돼서 협업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는데 그 의견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면서 “결국 ‘정부가 안하면 나라도 하겠다’는 단체장의 결단력에 의해 정부의 비공개 방침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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