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 日에 법적 책임 안묻는 등 위안부 문제에 전향적 태도 희망적
양국 여론 충돌은 과도기적 상황, 한국 존재감 커져 혐한 감정 유발
활자문화 교류로 이해 폭 넓혀야… 오락가락 통일·외교전략 피해야
재일본 한국인 2세 정치학자이자 유명작가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가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한일관계와 급속하게 재편되는 동북아 정세 속 한국의 생존전략을 진단했다.
강 교수는 1일 도쿄(東京) 치요다(千代田)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대 한일간 정치엘리트들이 분쟁을 조절하던 시기는 정상이 아니며, 양국 국민들의 의견이 영향을 끼치고 부딪치는 지금이 오히려 ‘과도기적 정상’ 상황이라고 짚었다. 강 교수는 한일관계 최대현안인 위안부 문제와 관련 “최근 한국의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일본정부가 이를 인정하고, 일본 정부기관이 구제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이 동북아에서 대북관계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며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연정을 해 국가적 대북ㆍ외교전략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폈다.
_아베 정권 출범 후 일본이 크게 변했다.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는 것인가.
“보통국가란 표현은 일본에서 많이 쓰지 않는다. 아베 정권은 적극적 평화주의란 단어를 강조하고 있다. 일본헌법에 명시된 소극적 입장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독일과 비교해 전후 처리가 불충분했지만 전수(專守)방위 입장을 지킴으로써 주변국이 안심하도록 했었다. 이런 체제가 바뀌면 일본이 동북아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_8월 아베 담화에 어떤 문구가 들어갈 것으로 보나.
“아베 정권이 계승한다고 말하는 무라야마 담화의 포인트는 세 가지에 있다. ▦과거에 대해 국가정책에 잘못이 있었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아시아의 나라들에게 다대한 고통을 줬다 ▦그것들을 굉장히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에서 깊은 반성을 언급했지만 사죄란 단어는 없었다. 아베 담화 역시 사죄는 없이 전후 일본의 걸음에 대한 긍정적 언급, 일본의 미래안보성향에 대한 방침이 될 것이다.”
_그럼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전망인가.
“반반 정도다. 미 의회 연설의 과거관련 발언에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는 자신감에서 식민지배, 침략, 사죄 같은 표현을 안 넣을 수 있다. 그럼에도 침략 등의 단어가 들어갈 가능성을 절반 정도 보는 것은 미국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일정상회담을 올해 안에 실현하려는 관점에서다. 아베 총리의 8월 담화에 대해 어느 정도 사전에 한국의 이해를 받을 필요가 있다.”
_내년 참의원 선거 이후 아베 정권이 개헌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고 보나.
“지금 안보법안 안에 실질적으로 헌법개정 효과를 볼 내용이 다 포함돼 있지만 개헌까지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투표에서 찬성을 얻을 수 있을지는 반대 여론의 벽이 높다. 아베 정권은 자연재해나 지진, 질서의 혼란 같은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를 다루는 긴급사태조항부터 고칠 것이다. 그러나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헌법48조 제2항에서 비상시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을 가능하게 한 조항이 나치의 출현에 큰 기회로 작용했다.”
_이 달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고 있지만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사실 나는 지금의 한일관계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양국관계가 정상적이던 시절이 언제 있었냐. 아마도 정상에 가까웠던 시절이 1998년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당시의 잠깐의 시기였다. 물론 이런 화해 무드 속에 일본에서 한류 붐도 출현했다. 하지만 일본 안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한일관계가 정상이었다고 보는 사람도 존재한다. 일부 로비스트와 각종 비공식 네트워크에 의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한일관계가 조정됐던 시기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몇 번의 위기가 있었다.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박 대통령의 시해사건에 이은 광주민주화운동 등. 그러나 권위주의적 독재정권과 일본의 보수적인 정치가의 협력으로 한일관계는 잘 조정돼 왔다.”
_지금이 오히려 불가피한 과도기적 상황이란 설명인가.
“일본과 한국의 일부 정치가나 권력을 쥔 소수에 의해 한일 관계가 좌우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 동안 한국은 민주화 됐고 경제적으로 커졌다. 한일관계도 크게 변했고 한국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한일관계를 조정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이것을 ‘민주화의 패러독스’라고 본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국민들 사이의 내셔널리즘이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런 프로세스를 한번은 거치지 않으면 한일의 진정한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지금의 대립은 과도기적인 것이다.”
_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간 해결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이 있었지만 한국의 희생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타협점이 보이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한국의 정대협이 태도를 바꾼 게 가장 크다. 처음엔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과 관계자 처벌까지 얘기했지만,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확실한 사죄, 명예회복, 구제를 한다면 어느 정도 타협할 수 있다는 자세 변화가 있다. 다만 정상회담 성사까지는 아직 변수가 많이 남아있다.”
_중국의 부상과 미일동맹 강화, 한국은 어떤 생존전략을 찾아야 하나.
“한국과 북한 사이에 긴장완화가 실현되면 미일중과의 관계 속에서 한국에게 더 많은 재량권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다. 반면 북한과 긴장이 고조될수록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에 대해 한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남북관계가 개선된다면 일본국민의 한국에 대한 감정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북한내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도 남북간 접촉을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 박근혜 정권이 북한과 대화모드로 들어갈 타이밍은 지금밖에 없다. 올해를 놓치면 임기 후반이다. 동북아 정세에서 북한문제가 중요한데 실은 더 시급한 것이 한국의 국내정치다. ”
_국내정치라면 내부 분열을 말하는 것인가.
“이전보다 약화되긴 했어도 지역주의가 아직 강하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제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본다. 독일처럼 명목상의 대통령이 있고 실질적으로는 의원내각제를 해서 총리가 정권을 운영하는 방식이 좋다고 본다.”
_권력구조만 바꾸면 좋아질 수 있나.
“비웃는 분도 있겠지만 나는 예전부터 정파간 대연정을 주장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대연합을 한다는 게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독일은 사회민주당과 기독민주당이 대연정을 했고 거기서 빌리 브란트 전 총리의 동방정책이 가능했다. 여당이 총리하고 야당이 명목상 대통령을 맡아 대북정책이 정권이 바뀔때마다 오락가락 하지 않아야 한다. 독일은 여야가 바뀌어도 외무장관은 바뀌지 않았다.”
_한일관계 복원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한국의 평택시에는 미군기지가 있고 황해를 넘어 중국으로 가는 자동차 수출항이 있다. 이곳이 한국의 현재위치를 상징하는 곳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의 3분의 1 정도지만 1인당 GDP는 거의 일본에 가까워지고 있다. 유럽의 국력으로 보면 한국은 대국이다. 그런 한국이 미중일의 중간에 끼여 좌충우돌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일본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경쟁상대가 됐고 혐한 감정도 생겼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문화교류다. 한류로 영화 음악 비주얼 감성은 일본에 정착됐지만 한국의 활자문화는 교류가 부족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이 일본에 전해져야 한다. 상대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글 사진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상> 찰스 글레이저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
<중> 류장융(劉江永) 중국 칭화(淸華)대 교수
<하 > 강상중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재일 한국인 첫 도쿄대 정교수… 日 간판급 지식인 강상중 교수는 누구
강상중 교수는 일본사회에서 수많은 팬들을 보유한 일본의 간판급 지식인이다. 방송사의 해설자로 자주 등장하며 신문 칼럼니스트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1950년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에서 출생해 독일 뉘른베르크대에서 정치학과 정치사상사를 전공했다. 1998년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되면서 교포사회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지난해 4월 세이카쿠인(聖學院)대학 총장으로 취임했으나 3월 사임했다. 그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최근 근황과 관련 “대학이 가지고 있는 재정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사장과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갑작스런 사임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정년이 70살까지인데 65살로 낮추고 대신 65살부터 재고용해서 연봉을 낮추는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반발이 거셌다”며 “표면상으론 이런 상황 때문에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재단과의 갈등으로 퇴임한 강 교수의 근황은 일본사회에서 관심거리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그는 교포 2세로서 정체성에 대한 오랜 고민을 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인들을 격려하는 ‘고민하는 힘’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아들의 죽음 등을 계기로 쓴 ‘살아야 하는 이유’도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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