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진주 기자

등록 : 2018.02.24 16:00
수정 : 2018.02.27 13:43

[다만세] ‘중동의 해방구’ 바레인, 돼지고기 팔고 클럽 북적

등록 : 2018.02.24 16:00
수정 : 2018.02.27 13:43


※편집자주: 다만세는 ‘다시 만난 세계’의 줄임말입니다. 국제뉴스에서 소외됐던, 그러나 흥미로운 나라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연재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바레인을 잇는 해상연육교에선 매주 금요일 밤마다 대이동이 시작된다. 한주간의 피로를 떨치고 잠시나마 자유의 몸이 되길 바라는 사우디인들이 바레인을 향해 내달리기 때문이다.사우디는 사회 전반에 이슬람 교리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손꼽힌다. 최근 왕위를 계승한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고, 비키니가 허용되는 관광특화지구 조성에 나서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자국민들의 억눌린 욕구를 풀어주기엔 역부족이다. 그런 사우디인들에게 바레인은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다.

바레인은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서구문화에 관대하고 개방적이다. 이슬람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돼지고기와 술도 이곳에선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특히 수도 마나마는 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는 클럽이 즐비해 중동 청년들에게 인기다. 돼지고기도 삼겹살부터 소시지, 베이컨까지 다양한 형태로 맛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바레인은 금융ㆍIT 분야에서도 첨단 가도를 달려 ‘중동의 홍콩’이란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레인을 주변 국가들과 차별화시켰을까.

바레인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생명의 나무’.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서 무려 3,000년을 버틴 생명력 질긴 나무다. 바레인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플리커 제공

고대의 낙원 ‘딜문 제국’의 후예

바레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기원전 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바레인엔 고대 문명 중 하나인 ‘딜문(Dilmun) 제국’이 번성하고 있었다. 딜문은 수메르 전설 속 유토피아라는 것 외에 관련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한 때는 ‘신화적 지명’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고고학자들의 연구와 조사 끝에 딜문이 실재했으며, 그 위치가 페르시아만 서안에 위치한 지금의 바레인임이 밝혀졌다.

당시 딜문은 인더스 문명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크게 발전했다. 인더스에서 바닷길로 메소포타미아에 가려면 반드시 페르시아만을 거쳐야 했는데, 그 길목에 딜문이 있었던 것. 메소포타미아에서 딜문까지 배로 이틀이 걸렸다고 하니, 거리가 훨씬 먼 인더스 강 유역까지는 수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들은 주로 딜문에 배를 정박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물건을 하역해 거래를 하곤 했다. 이 때 딜문을 오가던 외부인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은 게 있다. 과일과 보석이다. 물이 귀한 중동에서 유일하게 지하수가 풍부했던 딜문엔 대추야자, 코코넛 등 각종 과일과 채소가 지천일 뿐만 아니라 자연산 진주로 만든 우아한 장식품들이 쏟아졌다. 수많은 고대인들이 딜문을 ‘지상 낙원’이라 칭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고대의 한 서판은 딜문을 가리켜 “주민들이 영원히 젊고 병으로 고통 받지 않으며 늑대나 사자가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는 낙원”으로 묘사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대표적 문학작품인 ‘길가메시 서사시’ 또한 딜문을 “홍옥으로 된 나무에 투명하고 붉은 구슬의 포도송이가 묵직하게 맺혀 있고, (중략) 나무줄기엔 진주가 조르르 맺혀 있는 섬”으로 그렸다. 이 같은 평화롭고 풍족한 모습 때문에 일각에선 딜문이 에덴동산의 원형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바레인에서 열린 모터쇼에서 사람들이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다. 플리커 제공

1200만명이 해상연육교 건너 바레인으로

고대부터 중계무역을 하며 번성한 탓에 바레인은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큰 거리낌이 없다. 이슬람 율법을 준수하지만, 율법에만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면으로의 변화를 꾀한다. 일부 허용된 식당과 호텔 등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판매하는 게 대표적이다. 돼지고기 판매의 경우, 2014년에 판매금지 법률안이 국회에 제안되기도 했으나 ▦바레인 비(非)무슬림 권리에 위배되며 ▦종교적 관용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보류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바레인 정부는 중동 국가들이 꺼리는 서양영화나 공연, 박람회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데 이어, 2004년엔 중동지역 최초로 국제스포츠이벤트인 포뮬러1(F1)을 개최했다.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에서 매년 개최되는 바레인 F1 그랑프리는 현재 월드 챔피언십 레이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동지역에서 보기 드문 문화를 즐길 수 있다 보니, 지난 한 해 동안만 1,200만여명의 중동인이 해상연육교를 건너 바레인을 방문했다. 바레인 인구(150만명)의 약 8배에 달하는 수치로 방문객의 80% 이상은 사우디인이다.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주말마다 마나마에선 호텔 빈방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바레인에서 개최한 포뮬러1(F1) 경기 모습. 플리커 제공

바레인이 이처럼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엔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현재 바레인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외국인 때문이다. 석유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외부자본을 유치하면서 외국인이 급격히 불어났고, 그들은 이제 바레인 경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자원이다. 정부는 사회ㆍ문화적 이질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슬람 율법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 외에도 ▦회사 설립시 외국인(법인 포함)의 지분참여 비중을 확대(49%→100%)하고, ▦외국인(법인) 활동 제한 분야를 완화하는 등 외국인에 우호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보다 편리한 기업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IT인프라 확대에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1995년에 중동 주요 국가 중 처음으로 전국에 인터넷 서비스를 실시해 현재는 전체 가구의 95%가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해외거주자 네트워크 사이트 ‘인터네이션(InterNations)’이 지난해 전세계 65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1만2,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바레인은 ‘외국인이 거주ㆍ근무하기 좋은 국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바레인 전경. 플리커 제공

‘포스트 오일’ 대비하며 ‘금융 허브’로

바레인은 1932년 아랍권 최초로 유전이 개발돼, 석유수입을 기반으로 사회간접자본(SOC)을 정비하고, 교육과 복지의 질을 대폭 끌어올리며 경제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석유로 인한 호황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바레인의 석유매장량(1억2,460만배럴ㆍ2017년 기준 잔류량)이 사우디(2,665억배럴ㆍ2017년 기준 잔류량) 등 주변 산유국들에 비해 턱없이 적었기 때문이다. 중동 산유국들이 본격적인 유전개발에 착수한 1980년대부터 바레인은 더 이상 석유에만 의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산업 다각화를 서둘렀다.

바레인 전경. 플리커 제공

바레인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산업은 금융이다. 중동의 금융시스템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따르기 때문에 서구와는 여러모로 다르다. 이자소득을 ‘부당이득’으로 간주하는 게 대표적이다. 바레인은 이 같은 차이에 기반해 세계 최초로 이슬람 금융산업 규정을 체계화하고,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Skuku)를 발행했다. 수쿠크는 이자 대신 배당금으로 수익을 배분한다. 바레인은 이 밖에도 이슬람 금융기관(52개)과 이슬람은행(25개)을 유치해 명실공히 ‘이슬람 금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최근엔 이슬람을 넘어 세계적인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비이슬람권 국가의 금융기관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바레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금융기관은 400여개다. 일찌감치 금융산업 육성에 매진한 결과 금융이 바레인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6%대(2016년 기준)로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바레인의 금융산업이 성공적으로 손꼽히는 건 단순히 많은 금융기관을 유치해서만은 아니다. 현재 바레인의 외국인 비율은 전체 인구대비 54%인 반면 고용인구 대비 비율은 77%에 달한다. 이에 대한 자국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1996년부터 업종별 쿼터를 지정해 ‘자국민 고용우선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일부 업종에선 숙련된 바레인 노동자가 턱없이 부족해 쿼터를 채우기 어려웠고, 울며 겨자 먹기로 채용한 비숙련 노동자들로 인해 기업의 불만이 커지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반면 금융산업의 경우, 정부의 끈질긴 인재양성 덕에 종사자 중 자국민비율을 66%까지 끌어올렸다.

중동의 관문… 오일 달러의 추억

‘중동건설 붐’이 불었던 1970~80년대 한국인들에게 바레인은 ‘중동의 관문’으로 통했다. 당시만 해도 중동으로 가는 항공편이 마땅치 않았는데, 1975년 바레인으로 가는 하늘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 시기 바레인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주로 인프라 건설에 참여했다. 문화청 청사 등 마나마 시내의 여러 랜드마크 빌딩들에는 한국인들의 땀방울이 스며들어 있다.

국내 대기업 중 하나인 현대그룹 또한 당시 바레인에서 따낸 수주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1975년 1억3,000만달러 규모의 바레인 아랍수리조선소 공사를 수주하며 중동에 첫 발을 내딘 현대는, 이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고 이듬해 9억3,000만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도 수주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라 불릴 정도의 대규모 공사였다. 이 기간 현대가 벌어들인 외화 수입만 6,400만달러(약 693억원)에 달한다.

최근 바레인 경제는 옛 전성기가 무색할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 탓이다. 2012년 111억달러였던 예산적자가 2016년엔 236억달러로 4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재정적자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바레인 정부는 ▦유류보조금 폐지 ▦휘발유 가격 60% 인상 ▦2주택이상 보유자 및 대기업 대상 전기ㆍ수도 보조금 폐지 ▦개별소득세 도입 등의 광범위한 긴축재정에 돌입하며 허리띠를 바짝 조이고 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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