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콘크리트 건물 특성 무시… 표면 갈아내 상처 투성이
“도대체 이 건물에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지난달 28일 오전 광주월드컵경기장 노출콘크리트 표면보수 공사 현장.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외벽을 살펴보던 노출콘크리트 전문보수업체 관계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표면이 심하게 갈려있어 노출콘크리트 특유의 자연스런 질감과 색감이 모두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건 보수공사가 아니라 훼손공사”라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공사를 발주한 광주시와 감리단은 뭐하고 있었는지 한심하다”고 탄식했다.
결국 우려가 현실이 됐다. 도장(塗裝) 방식의 특허공법이 적용된 보수공사가 되레 광주월드컵경기장의 빼어난 건축미를 훼손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요즘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선 노출콘크리트로 마감된 외벽 등 건축구조물을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기 위해 A업체가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업체는 물때 등 노출콘크리트 표면에 생긴 각종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그라인더로 표면을 갈아내고 있다. 현재 표면을 갈아낸 면적은 전체 공사 면적(3만2,780㎡)의 거의 절반에 달한다. 이 업체는 표면갈이가 끝나면 노출콘크리트의 중성화를 막는 보수재와 도장재를 바르고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그러나 A업체가 노출콘크리트를 보수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교각이나 옹벽 등 토목구조물에 쓰는 공법으로 공사를 하면서 노출콘크리트 표면이 상처투성이가 됐다. 현장을 둘러본 또 다른 노출콘크리트 보수업체 관계자는 “노출콘크리트 보수는 오염된 부분만 시공해 주변 콘크리트의 색감과 질감을 맞춰 최대한 자연미를 살리는 게 핵심인데 이를 무시한 채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면갈이도 너무 깊게 돼 있고 표면에 흠집이 생기는 등 손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노출콘크리트의 탄성화 방지를 위해 페인트 같은 도장재를 바른다는 점이다. 광주시와 A업체는 노출콘크리트와 비슷한 색감을 내는 도장재를 찾기 위해 샘플시공을 하고 있지만 아직 노출콘크리트와 맞는 제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가 공사 계약을 해놓고 뒤늦게 적용 공법의 기술력 등을 확인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가 공사 발주 당시부터 노출콘크리트 보수에 적합하지 않고 공사비(설계금액 14억1,000여 만원)도 노출콘크리트 전문 보수공법보다 3배나 비싼 도장방식의 특허공법을 공사에 적용하겠다고 고집한 탓이다. 건축전문가들은 “무채색의 노출콘크리트 원형을 복원하겠다면서 색감 있는 도장재를 바르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광주시의 근시안적 행정이 빼어난 건축미를 자랑하는 광주월드컵경기장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상황이 이런대도 감리단은 공사 현장에 적용된 특허공법의 적정성 여부와 경기장 원형 훼손 방지 등에 대한 의견조차 내놓지 못하고 뒷짐만 지고 있다. 공법의 적정성에 대한 감사를 벌였던 광주시도 감사 결과까지 축소ㆍ왜곡하면서 경기장 훼손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요구에는 귀를 막고 있다. 이 때문에 시청 안팎에선 “시가 해당 특허공법을 사용한 업체의 노출콘크리트 보수공사 실적을 만들어주기 위해 공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건축사 C씨는 “이번 공사를 둘러싼 광주시의 행태를 보면 해당 특허공법을 밀어주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며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가 혈세까지 낭비해가며 공공건축물의 건축미를 깎아 내리는 주범이 돼서야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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