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가 성소수자들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 2015’의 서울광장 개최를 거부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서울광장 사용을 “접수조차 하지 못했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서울시는 다른 행사들이 밀려 접수가 안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의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발언과 맞물려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는 스스로가 온전한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의 배우이자 극작가, 퀴어운동가인 케이트 본스타인은 따발총 같은 질문으로 성별에 대한 일반의 확신을 저격한다.
“당신은 아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여자인가? 많은 여자가 임신 가능성이 없는 몸으로 태어나고, 갱년기 이후에는 모든 여자가 임신 가능성이 없다. 이 여자들이 여자이기를 그만둔 것일까? 건강상의 이유로 자궁 절제술을 받았다면 이 수술은 성전환인가? 당신은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어서 남자인가? 만일 당신의 정자 수가 적어서 임신이 어렵다면 어떨까? 당신이 방사능 피폭으로 임신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러면 당신은 여자가 되는 것인가?” 100%의 남성(혹은 여성)이라는 굳은 믿음의 근거가 태아의 다리 사이를 확인한 의사의 한 마디라면, 성기를 이용한 생식능력의 유무라면 그것은 위태로운 기준이라는 것이다.
본스타인의 성별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그는 남자의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성기 절제술을 받아 여자의 몸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트랜스젠더라 부르면 되겠지만 그의 성적 취향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그럼 트랜스섹슈얼 레즈비언인가? 미안하지만 본스타인의 애인은 여성에서 남성으로 젠더 전환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치민다. 그 짜증의 방향은 둘 중 하나다. 얼마 없는 성별란에 순순히 자신을 끼워 맞추려 들지 않는 소수자들에 대한 짜증이거나, 성별란의 턱없이 모자란 개수에 대한 짜증이거나.
이번에 번역된 본스타인의 저서 ‘젠더 무법자’는 벌써 20년 전 쓰인 젠더 이론서다. 출간 당시엔 저자 자신도 책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세계 200곳 이상의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올해 66세인 저자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50년대엔 단 두 개의 성별만이 존재했다. 성별을 지정할 권한은 온전히 국가와 의료전문가, 종교에 귀속돼 있었고, 개인은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스타인은 성별과 젠더의 괴리를 외면하는 것보다 그것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세상을 들쑤시는 쪽을 택했다.
저자는 책에서 성소수자들을 인정해주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도리어 트랜스젠더들을 고통 받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책과 미디어를 질타하며, 개인의 젠더 선택권을 지지한다. 성행위에 있어 행위자를 고양시키는 것은 상대방의 성별이라는 당연한 믿음에, 문화의 설득 혹은 강요가 개입돼 있을 수 있다는 본스타인의 주장은 지금 들어도 파격적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이성애뿐 아니라 동성애에까지 지배문화의 검열 흔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인류의 수만큼 많은 젠더 선택권을 보장하라는 저자의 부르짖음은 개인의 자유뿐 아니라, 세계의 권력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본스타인에 따르면 젠더는 계급의 다른 이름이며 이것이 젠더 의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자 아니면 여자라고 부르는 이것 아니면 저것의 젠더 계급 체제, 하나가 올라가면 다른 하나는 내려와야 하는 그 구조는 권력의 불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분법적 젠더 체제가 집요하게 유지, 존속되는 이유는 그 체제가 주로 권력 게임을 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 위계질서의 틀로 사용할 성별이 없어지면 젠더 체제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구성원은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난 여기서 ‘남성 특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저마다 특권을 내려놓고 성별과 성 역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본스타인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날이 올까. 그러기엔, 자유를 찾아 나서는 우리의 발걸음은 너무 무겁고 권리를 놓지 않으려는 우리의 악력은 너무 강한 것이 아닐까.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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