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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수준은 높아지는데 시스템은 퇴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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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수준은 높아지는데 시스템은 퇴보해요”

입력
2015.12.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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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에 참석한 한국일보 외국인 칼럼니스트. 왼쪽부터 배리 웰시 숙명여대 객원교수, 막사르자의 온드라흐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 영화 칼럼니스트 쓰치다 마키씨.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좌담에 참석한 한국일보 외국인 칼럼니스트. 왼쪽부터 배리 웰시 숙명여대 객원교수, 막사르자의 온드라흐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 방송인 일리야 벨랴코프, 영화 칼럼니스트 쓰치다 마키씨.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메르스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북한의 지뢰 도발,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그리고 연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까지 다사다난했던 2015년이 저물고 있다.

한국일보에 ‘한국에 살며’ 칼럼을 쓰는 네 명의 외국인이 29일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는 좌담회를 가졌다. 영화 칼럼니스트인 일본인 쓰치다 마키(50)씨, 방송활동을 하는 러시아인 일리야 벨랴코프(33)씨, 서울시 외국인부시장 고문을 맡고 있는 몽골 출신 막사르자의 온드라흐(42)씨, 숙명여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국인 배리 웰시(36)씨는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0년 넘게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200만 명을 헤아린다. 지난 한 해 한국사회는 그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지난 한 해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일은.

마키=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이다. 한국과 일본은 온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일본 국민에게는 큰 관심사는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2년 남았는데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관심사다.

일리야=큰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세 가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는 전환점이 됐다. 러시아에서도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가 있었지만 사회적 반발이 심해 무산됐다. YS는 대한민국 역사에 기여를 많이 한 대통령이다. 남긴 흔적이 깊고 뚜렷했다.

온드라흐=메르스 때문에 힘든 한 해였다. 낙타가 없는 나라에 바이러스가 들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이 세계적으로 많이 돌아다닌다는 의미인 것 같다. 서울시에서 외국인 대표자 회의를 만들었다는 점도 내겐 중요한 일이었다. 외국인이 행정에 참여한다는 것은 서울이 글로벌 도시로 변해간다는 뜻도 된다.

배리=관심사가 문학이다 보니 해외에서 번역된 한국 문학이 크게 성공한 일이 기억에 남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에서 번역돼 큰 성공을 거뒀다. 정치적으로는 위안부 문제 타결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발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한국 사회가 나아지고 있다고 느끼나.

마키=나아지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한다. 민주화됐지만 최근에 봉건사회로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박근혜 정권이 너무 경직돼 있고 후퇴한다는 인상을 준다. 시스템은 역행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나아지고 있다. 국민들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월호 참사 문제도 그렇고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온드라흐=한국 사회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한 해 한 해가 다르다. 아쉬운 점은 대통령의 정책 수립이다. 여자라서 세심한 정책을 내세울 줄 알았는데 전문적으로 세심하게 하지 않고 무더기로 묶어 정책을 낸다. 세심한 배려가 없다.

일리야=지난 한 해는 침체였던 것 같다. 아쉬운 뉴스가 많았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때리는 게 내겐 큰 충격이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나아진다고도 나빠졌다고도 볼 수 있다.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나 관점이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 들어 외국인에 대한 대우가 나빠졌다. 비자 연장이 이명박정부 때보다 5배 정도 어려워졌다. 또 이전 정부에서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 많았는데 박근혜정부 들어서 다 없어졌다. 재정 지원도 취소됐다.

배리=많은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재능도 뛰어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직업적으로 성공하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고 있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기 때문에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것은.

마키=한국에 있던 좋은 문화를 어떻게 지켜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 1980년대 한국에 왔을 때는 버스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들어 주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이제 그런 문화는 사라졌다.

온드라흐=노인 문제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독거노인이 많아졌다. 어르신을 우대하는 생각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마키=한국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모두 여자다. 일본은 다 노인이 한다. 한국 노인들은 왜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남자는 창피해서 안 한다고 하더라.

일리야=시급한 건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다. 러시아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없다. 모두 정규직이다. 충분한 이유가 있거나 자발적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회사가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한국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동등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각박해지고 삭막해지는 느낌이 든다. 노인 문제도 그렇다.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난 여름 서울 여의도에서 어떤 여자가 기절해 쓰러졌는데 주위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렸다. 남의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배리=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큰 문제인 것 같다. 특히 동남아에서 온 근로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여전히 심하다.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에 문제는 없는가.

마키=예전에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다. 요즘엔 많이 없어졌다.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부르는 일도 많았는데 많이 줄었다.

온드라흐=한국에 와서 사는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다. ‘나는 한국산이야’라고. 미국에서 소를 수입해 와서 3년간 한국에서 사료를 먹이면 한국산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 와서 한국 호적에도 올라가고 10년, 20년 한국 밥을 먹어도 한국산이 안 됐다.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언제쯤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한국인은 외국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태도의 차이를 보인다. 뭐 하는 사람인지, 어디 출신인지에 따라 다르다.

일리야=한국사람은 선을 긋는다. 외국사람은 미국인 우선이다. 한국에 얼마나 많은 나라 사람이 사는가. 지금은 2015년이지 조선시대가 아니다.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법적인 처우가 좋아지다가 현 정권 들어 나빠지고 있다. 2000년에는 비자 등급이 없었는데 얼마 전부터 A, B, C, D, F 등 비자 등급이 세분화됐고 발급이 까다로워졌다. 특히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심한 차별을 느낀다. 반말 하는 경우가 많고 거의 욕설에 가까운 말을 듣기도 한다. 업무가 힘든 건 이해하겠지만 예의를 지켰으면 좋겠다.

배리=한국에서 살며 나는 긍정적인 차별을 받는다. 어디를 가도 유난히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준다. 미국 원주민 여성과 결혼한 한 미국인 친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아주 다른 대접을 받는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심하게 좋지 않은 경험을 한 뒤 미국으로 돌아갔다. 서양 문화권에서 온 사람과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개인 대 개인으로는 문제가 크지 않을 수 있지만 사회적 수준에서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일리야=미국이나 유럽에서 오는 사람들은 한국을 좋아한다. 대우가 좋으니까. 동남아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을 싫어한다.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도 한국인들이 대하는 태도에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유럽이나 영어권 외국인들에게는 영어 연습하려고 적극적으로 대하지만 필리핀이나 베트남, 몽골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에게 가장 좋게 대하는 경우는 무관심이고 최악의 경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2016년은 한국에, 또 출신국에 어떤 해가 될 것 같나.

배리=영국은 정치적으로 흥미로운 상황이다. 제1야당인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극좌인데 기존 정치계는 그를 싫어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모든 것에 코빈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한국 소설이 해외에서도 계속 큰 성공을 거두는 걸 보고 싶다.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이 국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렸으면 좋겠다.

일리야=올해도 그렇지만 내년도 러시아에는 좋은 해가 될 것 같지 않다. 유가 하락으로 경제가 좋지 않다. 사회적 긴장이 커지고 있다. 반(反)푸틴 정서도 커지고 있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어 정치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다. 시리아 공습의 부작용으로 테러 위험도 크다. 한국은 좀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최근 2년간 큰 일들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정치ㆍ사회적 문제가 많았고 인명 피해도 많았다. 내년에는 그런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교과서 국정화 같은 실수가 없길 바란다. 한일 관계가 개선될 기미도 보이니 계속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중국과 관계도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계획이 있다. 기대가 크다.

온드라흐=환율이 올라 몽골에서 한국을 방문하기 어려워졌다. 몽골 경제가 나아졌으면 좋겠다. 올해 한국에서는 많은 사건ㆍ사고가 있었다. 국회는 무슨 일이 터져야 정책을 세운다. 이런 사건들에 대한 예방책을 내놓을 수 있는 국회의원 선거가 됐으면 좋겠다.

마키=큰 사고나 사건을 겪으면 교훈을 얻어 이를 예방하는 정책이 수립돼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그런 점이 나아지길 바란다. 한일 관계는 점점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한류가 과거만큼 일본에서 다시 유행하진 않을 것 같다.

정리=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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