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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논설실장

등록 : 2017.05.01 19:24

[이계성 칼럼] 부처님 손바닥과 김정은

등록 : 2017.05.01 19:24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후 의기투합

김정은 통제 위해 미ㆍ중 협력은 필수

차기 대통령은 코리아 패싱 극복해야

4월 7일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트럼프-시진핑 회담은 미ㆍ중의 북핵ㆍ미사일 문제 공동대응에 중요한 분수령이 됐다.

지금 우리 발등의 불은 ‘주적(主敵)’보다 ‘강적(强敵)’이다. 상식을 넘어 럭비공처럼 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가 근래 맞닥뜨려본 적이 없는 강적이다.

5ㆍ9 대선 정국으로 경황이 없는 사이 한미FTA의 폐기 또는 재협상, 1조원 대에 달하는 주한미군 사드 비용 부담 요구 발언 등을 마구 쏟아내 우리의 혼을 쏙 빼놓고 있다. 안보와 상거래 문제를 마구 뒤섞는 변칙 플레이도 서슴지 않고 있다. 1주일 후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돼도 참 골치 아프게 생겼다. 트럼프를 상대하는 게 영 버겁고 자신이 없는 후보라면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게 낫겠다.

현재의 안보 위기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좀 다른 생각을 한다. 차기 대통령의 역량에 따라서는 작금 트럼프가 벌이고 있는 어지러운 판이 북한 핵ㆍ미사일 위기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다. 무엇보다도 지난달 6, 7일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ㆍ시진핑 두 사람이 마치 북한 문제 해결에 의기투합한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는 틈만 나면 “잘하고 있다”고 시진핑을 추켜세우고 있다. “중국이 돕는다면 우리는 북핵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지난달 29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중국과 시진핑 주석을 무시한 처사”라며 시 주석을 끌고 들어가 북한을 압박했다. 시진핑도 최근 북한산 석탄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대북 원유공급 축소 가능성을 흘리는 등 대북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뭔가 두 사람 간 장단이 잘 맞아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전쟁과 같은 파국을 거치지 않고 북 핵ㆍ미사일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G2를 구가하는 두 나라의 국력과 군사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이자 대표적 실패 국가인 북한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두 나라가 협력해 김정은 정권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부처님 손바닥 같은 강력한 틀을 만들 수만 있다면 북한 문제 해결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 틀은 그러한 시도의 하나였지만 미국과 중국의 동상이몽으로 북한을 어설픈 우리에 가뒀다가 놓아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가 오늘의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기다.

이제는 상황이 좀 다르다. 마라라고 리조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시진핑 간 모종의 큰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는 2개월 간 검토를 거쳐 ‘최대 압박과 개입’을 대북 정책으로 내걸었다. 당장은 군사적 조치까지 배제하지 않은 최대의 압박에 무게가 실려 있지만 트럼프의 내심은 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향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트럼프 행정부가 상원의원 100명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대북정책을 브리핑 한 뒤 발표한 국무장관 국방장관 국가정보국장 명의의 합동성명에 그런 방향이 잘 표현돼 있다.

물론 김정은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트럼프 못지 않은 어려운 상대이고 강적이다. 후보 시절 그에 대해 “미쳤거나 천재이거나”라고 촌평했던 트럼프는 30일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는 “꽤 영리한 녀석”(pretty smart cookie)이라고 했다. 천방지축의 손오공을 부처님 손바닥 안에 가두듯이 그를 통제하는 상황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ㆍ중이 손을 잡고 주변국들과 힘을 모아가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다. 지금은 트럼프와 시진핑이 주도하는 형세 속에서 한국 배제, 즉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에서 미ㆍ중이 대립하지 않고 협력하는 국면은 기회라는 적극적 발상이 필요하다. 우리의 힘으로는 만들어 내기 어려운 국면이 열리고 있는 것을 반겨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전략적 사고 부재가 부른 작금의 사드 외교참사도 그런 발상으로 접근해야 해결의 길이 열린다. 차기 대통령은 지금의 안보위기를 그런 기회로 바꿔 나갈 역량과 비전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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