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위 통신업체 AT&T
97조원에 인수 ‘빅딜’ 합의
‘플랫폼+콘텐츠’ 새 돌파구
통신ㆍ미디어 공룡 기업 눈앞
연방통신위 승인이 막판 관건
허가 땐 합병 바람 거세질 듯
SKT-CJ헬로비전 무산 후
국내에선 M&A 진전 없어
“모바일의 미래는 동영상이고, 동영상의 미래는 모바일이다.”
미국 2위 통신업체 AT&T가 종합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를 인수하며 밝힌 이유다. 플랫폼과 콘텐츠를 아우르는 이종(異種) 업종간의 결합으로 성장의 돌파구를 찾을 수 밖에 없다는 게 AT&T의 판단이다. 인수 금액만 100조원에 가까운 통신ㆍ미디어 공룡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최종 성사되면 전 세계적인 통신과 방송의 통합 흐름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난 7월 우리나라에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가 정부의 불허로 무산된 바 있다.
올해 최대 M&A
AT&T는 22일(현지시간) 타임워너를 총 854억달러(약 97조원)에 인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랜들 스티븐슨 AT&T 회장은 성명에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완벽한 만남”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타임워너가 가진 부채까지 포함하면 AT&T가 부담하게 될 금액은 총 1,087억달러(124조원)에 이른다. 이번 M&A의 규모는 미국 통신ㆍ미디어 업계에선 2011년 케이블TV 업체 컴캐스트와 영상 콘텐츠 제작사 NBC유니버설의 M&A 이후 가장 큰 것이다. 올해 전 세계 M&A 중에서도 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AT&T는 미국 이동통신시장에서 버라이즌에 이은 2위 업체다. 지난해 미국 최대 위성방송업체인 다이렉TV를 품에 안으면서 자사 인터넷(IP)TV와 합쳐 유료방송 시장에서도 탄탄한 지위를 확보했다. 현재 시가 총액은 2,260억달러(258조원) 안팎이다. 223조원 수준인 삼성전자보다 높다. 타임워너는 방송과 영화를 아우르는 종합 미디어 업체로, 시가 총액은 720억달러(82조원) 정도다. 산하에 영화 제작ㆍ배급사 워너 브라더스를 두고 있고, CNNㆍTBSㆍTNT 등 케이블TV 채널과 ‘왕좌의 게임’ 등 드라마로 유명한 유료방송 채널 HBO 등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 타임ㆍ포춘 등 20여 개 잡지를 발행하는 출판 부문도 있었지만 방송ㆍ영화 콘텐츠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2013년 분사시켰다. 케이블TV 업체인 타임워너케이블도 지난 5월 매각했다.
이종(異種)끼리 합쳐야 산다
AT&T가 타임워너를 사 들이려는 이유는 유ㆍ무선 통신 분야의 성장이 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갖고 있지만 이를 통해 실어 나를 콘텐츠가 없는 AT&T는 타임워너 인수로 뉴스ㆍ스포츠ㆍ오락 등 전 분야의 영상 콘텐츠를 단번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앞으로 5세대(5G) 이동통신이 상용화할 경우 동영상 같은 고용량 콘텐츠의 중요성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미국 정부가 이번 M&A를 승인할 지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두 업체의 사업 영역이 달라 서로 보완하는 성격이 큰 만큼 승인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컴캐스트와 NBC유니버설 M&A를 승인할 때 NBC유니버설의 콘텐츠를 컴캐스트에만 공급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붙인 것처럼 독과점을 막기 위한 조건부 승인이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통신ㆍ미디어 합병 거세질 듯
최근 미국 통신ㆍ미디어 업계는 M&A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최대 이통사인 버라이즌의 경우 동영상 서비스와 온라인 광고를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설정하고 지난해 검색ㆍ메일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 업체 AOL을 사들인 데 이어 지난 7월에는 야후의 인터넷 포털 사업도 인수하기로 했다. CNN은 “AT&T와 타임워너 M&A 협상을 계기로 디즈니나 21세기폭스 등 다른 미디어 기업들도 통신업체와 ‘빅 딜’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며 “통신ㆍ미디어 업계 합병에 새 물결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미국 업체들의 자발적인 M&A 움직임은 우리나라와는 크게 대조된다. 매년 수익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는 우리나라 케이블TV 업계는 M&A 등을 통한 구조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가 무산된 이후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유ㆍ무선 사업만으로 살아남기 어려워진 통신업체들이 콘텐츠 유통 등을 통해 부가가치 창출에 나서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중국 등 외국 투자 자본이 점점 더 유입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다른 산업 간 투자와 M&A를 적극 장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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