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폭염이 기후변화의 결과냐고 인과관계로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지만 확실한 것은 폭염이 과거에 비해 자주 나타나고 발생 시 기간이 길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이 같은 기후변화의 위기는 사람의 활동에 기인한 것이다.”
에너지 절약과 기후변화 문제의 국민적 공감대 확산을 위한 제13회 에너지의 날(22일)을 앞두고 최근 만난 안병옥(53)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기후변화는 우리가 실제 마주하고 있는 위험이자 현실이며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문명의 뿌리에 기후변화의 원인이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안 소장은 기후변화 문제를 연구하는 국내 대표적인 민간 전문가로, 독일에서 생태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후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을 지냈고 2009년 기후변화행동연구소를 설립했다.
386세대 환경운동의 대표주자인 그가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여러 환경문제의 연결고리에 기후문제가 있음을 깨달으면서부터다. “연구소 설립 당시 이미 외국에서는 기후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달리 ‘기후변화 불감증’ 수준인 한국에서 시민 시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대응할 그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말 세계 195개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합의한 파리협정을 예로 들어 “이제 화석연료 시대에서 재생연료 시대로 넘어가야 하는 시점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화석연료에 의존해 왔던 성장 전략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며 “과거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2년부터 서울시의 시민참여형 에너지 정책인 ‘원전하나줄이기’의 민관협력체 ‘원전하나줄이기실행위원회’ 위원장을 서울시 기후환경본부장과 공동으로 맡고 있기도 하다. 원전하나줄이기는 신재생 에너지 생산과 절약을 통해 원자력발전소 1기분의 에너지인 200만TOE(석유환산톤ㆍ1석유환산톤은 석유 1톤을 태울 때 생기는 에너지로 1TOE는 1,000만㎉에 해당한다)를 절감하는 사업으로, 계획보다 이른 2014년 상반기에 목표치를 달성했다.
이 같은 정책 추진의 배경에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해 국내 초유의 ‘9ㆍ15 대정전’,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 등이 있다. 밀양 송전탑 갈등은 발전시설은 지방에 집중되고 대도시 전력 소비지로 장거리 송전하는 데 따른 필연적 사회적 충돌 사례다. 안 소장은 “에너지 문제도 ‘사회 정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서울이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하는 대도시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에너지 프로슈머(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가 되기로 한 게 원전하나줄이기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에 대해 시민참여가 바탕이 되는 에너지 절약 부문에서 특히 큰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200만TOE 중에서 48만TOE를 에너지 절약 몫으로 계획했는데 실제 절약분은 2배에 가까운 91만TOE나 됐다. 전기ㆍ수도ㆍ도시가스 등 에너지를 절약하면 인센티브로 돌려주는 시민참여 프로그램 ‘에코마일리지’ 회원도 2012년 48만명에서 180만명으로 늘었다. “전국적으로 전력 소비가 증가하는 추세에서 전력 소비를 줄이기에 불리한 서울 같은 거대도시에서 이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시민 참여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최근 논의가 활발한 전기요금 누진제에 관해서도 의견을 보탰다. 그는 “시민들은 ‘어떻게 저렇게까지 절약하나’ 싶은 사례가 있을 정도로 이미 에너지 절약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가정용 전기요금에 가혹하게 적용되는 지금의 누진제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에너지정책은 정부 고유의 영역이 아니고 지자체가 실질 주체가 되는 게 맞다”면서도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은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산업통산자원부에서 에너지정책을 산업정책의 하위에 둘 것이 아니라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등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폭염 장기화가 전기요금 누진제의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진 데서 알 수 있듯 에너지는 식량, 물과 더불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며 “에너지정책 관련해서는 좀 더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정부체제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200만TOE 에너지 절감 목표 달성 후 2020년까지 원전 2기분의 에너지인 400만TOE를 생산ㆍ절감하고 온실가스 1,000만톤을 감축하는 ‘에너지살림도시 서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안 소장은 “‘원전하나줄이기’는 구상 단계부터 ‘시민 주도성’이 강조됐지만 여전히 하향식 정책 추진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장이 바뀌더라도 이 같은 에너지정책이 지속되려면 시민 참여를 꾸준히 독려하고 그 성과를 널리 알리는 게 중요하다”며 “시민은 늘 참여할 준비가 돼 있기 때문에 행정가들은 ‘사업의 실제 주인은 시민’이라는 메시지를 시민사회에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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